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30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한국 투자를 유치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밖에도 원전, 방산, 에너지 등의 협력을 강화하는 13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벌써부터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지난 한 해 외국인이 국내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305억 달러 정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UAE 순방에서 단번에 30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는 결실을 얻었으니 어느 정도의 성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이란’ 발언을 문제 삼아 성과 자체를 깎아내렸지만 해외 경제전문가들과 언론에서까지 지난해 11월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방한해 맺은 300억 달러 투자협약에 이은 겹경사로 여길 정도다. 재계는 이번 계약이 순조롭게 실행에 옮겨져 글로벌 경제 위기로 침체상태에 있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는 우리나라가 오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기까지 큰 역할을 했다. 1970∼80년대 오일쇼크 때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나자 우리 노동자들이 사우디 쿠웨이트 등 중동국가의 건설현장에 가장 먼저 파견됐다. 이들이 사막 한 가운데서 뜨거운 지열과 모래바람과 싸우며 벌어들인 ‘오일머니’가 한국 경제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최근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 값이 폭등하자 그 돈으로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원전 방산 에너지사업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에게는 ‘제2 중동 붐’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2 중동 붐’이 한쪽에선 기대감에 부풀게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걱정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중동의 산유부국들이 우리나라를 신뢰할만한 투자 파트너로 삼은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이들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들이 과연 순수하게 ‘오일머니’를 한국에 투자하는 것으로 그칠까 하는 점이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중동국가들과 활발한 교류와 투자협약이 있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는 식의 적극적인 면세 혜택을 검토했다. 그 것이 바로 일명 ‘스쿠크법’이다.
정부가 추진하던 친 중동 정책은 곧바로 기독교계와 충돌했다. 정부로서는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이슬람 자본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기독교계는 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수쿠크 수익의 2.5%를 기부하도록 하는 ‘자카트(Zakat)’ 규정 때문이다. 자카트 규정에 의하면 수익의 2.5%를 자동으로 기부하게 돼있다. 일종의 십일조 개념이다.
만약 중동에서 들어오는 오일머니에 대해 ‘스쿠크 법’으로 면세혜택을 주면 그 이익이 고스란히 이슬람교 내부 자금으로 쌓이게 된다는 말이 된다. 교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적극적인 국내 이슬람 포교나 테러 등의 활동자금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런 시도는 교계의 거센 반발에 여야 모두가 표를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들여 경제의 급한 불을 끄려는 정부의 시도와 그 속에 숨은 문제점을 기독교계가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숱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 사례로 남았다.
이번 윤 대통령의 중동 순방 성과가 과거와 같은 갈등을 재연할 소지는 아직까지는 없다.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교계는 윤 대통령이 이번 중동 순방에서 거둔 기대 이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2년이 넘도록 대구 대현동 주택가에 벌어지고 있는 주민과 이슬람 사원(모스크) 건축주 간의 마찰과 갈등도 예삿일로 넘길 수 없다. 중동의 ‘오닐머니’가 들어오면 이와 함께 이슬람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슬람 사원도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이런 갈등은 더 빈번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마찰과 갈등을 모두 ‘종교의 자유’에 대한 도전 또는 외국인 차별, 폄하로 여기는 일부의 시각이다. 대현동 모스크 건축 문제 만해도 국가인권위를 비롯해 많은 인권단체와 언론까지 건축주 편을 거드는 인상이 짙다.
그런데 교계에서는 과연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외국인이 한국에 모스크를 건축하는 걸 ‘종교의 자유’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 이란 선교사인 이만석 목사는 “(다른 나라 출신들이) 우리나라에 모스크를 지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도 그 쪽 나라에 가서 교회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 나라에서 교회를 차별하면서도 다른 나라에 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에 대한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옳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는 다른 문제다. 전 세계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이 지키는 ‘종교의 자유’가 유독 이슬람국가와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종교의 자유’를 거론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윤 대통령이 몰고 온 ‘제2의 중동붐’의 기운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려되는 문제들이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기 전에 정부가 사전에 보다 철저한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윤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는 기독교계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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