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있을 때 평신도목회(멜빈 목사님의 Lay Pastors Care Ministry/PACE)라는 테마로 사역을 하면서 교회들을 방문해 훈련을 시키곤 했다. 방배동의 한 교회에서 PACE 훈련을 시켰는데, 훈련 후에 동기부여가 얼마나 되었는지 체크하는 데가 훈련 교재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데, 100%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여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평생 이런 류의 사역(목회적 돌봄)을 하고 싶어 했으며, 이미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을 잘 돌봤고, 부목사님들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혼자서 이런 돌봄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주위에 이런 측면에서 동역자가 없었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불타는 그런 마음은 서서히 시들어지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PACE 훈련을 통해 그런 식어가던 마음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 교회에서 PACE 사역의 리더가 되었고, 나중에는 전국적인 사역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서 15년 간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순수 평신도였다.
또 다른 예는 익산의 한 교회에서 PACE 훈련을 수요일 목요일 이틀 저녁에 걸쳐 시켰는데(19명), 이튿날 저녁에는 8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 4시에 끝났다. 마지막 시간이 되어 돌아가면서 느낀 점을 얘기하라고 했는데, 한 남자 성도가 얘기하겠다고 일어섰다. 그의 얘기는 우선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였는데(그녀도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아주 젊어 보였다. 어쨌든 그는 그 순간 아내에게 매우 미안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고엽제 환자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매우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내에게 아주 나쁜 행동을 많이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직접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그 이후로 몇 년간 그에게 그리고 교회에 많은 변화가 그를 통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교회를 더 방문했는데 내 눈으로도 변화된 것을 보았다. 먼저 15~20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평신도사역 사무실을 교회의 2층에 본인 부담으로 꾸며서 평신도 사역자들이 늘 모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방문할 때면 그 자리에 앉아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또한, 앞마당에 예쁜 물고기들로 연못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회 모임 새벽종을 친다는 것이었다. 시골 교회의 전통적인 종소리인데, 추운 겨울에도 새벽 4시에 꼭 교회에 와서 종을 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벽기도회에 시간 맞추어 오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그는 PACE 사역을 통해 변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수년간 그 약속을 지켰다. 순수한 일반 평신도였다.
또 한 예는 분당에 있는 한 교회의 여권사님도 마찬가지인 경우이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께서 그 권사께 교회에서 PACE 사역이 필요한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 교인은 약 5,000명이 되었다. 그녀는 PACE 사역과 평신도목회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께서 해보라니 순종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사역을 책임지고, 그 교회에서 13년 이상 해냈던 것이었다. 순수한 평신도였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누구나 다 의미 있는 사역에는 기꺼이 동참하고 헌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역은 교회에 희망을 주고, 사역자들 자신이 성장하고, 그들은 또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진정한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존감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은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기 케냐의 교회들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해보며, 그것이 우리 멜빈대학교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기도 하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