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리더십에 대해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시키는 일차적 리더십부터 오픈 마인드로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 자신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리더십”까지 진행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글로벌 시대라, 다른 나라 사람들과 또 다른 나라에 갔을 때, 자국에서 하던 리더십을 그대로 발휘할 경우 효과가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한 가정에 새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생겨지는 상황과도 비슷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서로를 잘 모르니 처음에는 힘들다.

나도 처음 멜빈대학교에 왔을 때 그런 어려움이 있었는데, 문화가 너무 달라서였다. 특히 시간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그 당시 한번은 학교 사무실에서 부총장과 만날 시간 약속을 했는데, 약속의 세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어디냐고 물으니 시내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으니 곧 온다는 것이었다. 더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시내에 있는 곳에 찾아가서 막 화를 냈다. (나도 성격이 직선적이라). “왜 이렇게 시간 약속을 안 지키냐!”고. 우리 대학교 교무처장과 학교 얘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둘 다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얘기하느라고 약속시간을 못 지켰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케냐인들은 ‘시간개념(punctual)’이 없다고 한 학생이 나에게 얘기해주어서 재삼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은 영국에서도 공부했기에 자국인(케냐)들의 문제점을 알았던 것 같다. 예를들어 9시에 학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으면 거의 11시쯤에 나타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해지기 전에만 가면 된다는 개념인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많이 고쳐지긴 했다.

어떻게 보면 양쪽 다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문화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한쪽은 철저한 시간개념(punctual), 다른 한쪽은 그런 개념이 전혀 없이 자라온 것 등등이겠다. 결국, 한마디로 타문화에 적응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한국에도 다문화가 많고, 또 앞으로 더더욱 글로벌 시대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런 문제는 점점 더 대두될 것이다.

내가 세상에 적응할 것인가? 세상이 나에게 적응해올 것인가? 아일랜드의 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키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게 적응되기를 계속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후자라는 것이다. 그만큼 다들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어 주기를 바라는, 그런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또한,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의 스타일을 놓친다든지, 잃어버린다든지, 없애버리기가 싫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어쩌면 나는 승자(winner) 너는 패자(loser)라는 틀에 오랫동안 갇혀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그런 갭을 해결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실제에서는 그렇게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Global Dexterity(글로벌 적응력)’(by Andrew L. Molinsky, 2013)이라는 책을 보니, 타문화에 접촉될 때, 또는 타문화 인들과 사역할 때는, 그리고 타문화에 적응하려고 할 때 세 가지 핵심 도전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 자신이 지식이나 스킬에 있어 타문화에 적응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느낌이다. 나 같은 경우는 해외 나라 방문은 많이 했지만, 이렇게 아프리카는 처음이고 더구나 케냐에 와서 풀타임으로 2년째, 그리고 집중적으로 관리자 입장에 있기는 처음 있는 경험이라,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두 번째 도전은 나 자신의 과거 몸에 밴 생활습관, 나 자신의 타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의 신념” 같은 것이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서 목사) 자체가 뭔가에 대한 신념이랄까 그런 것이 강한 편이라 그런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지만, 외국인들과 오래, 함께 사역하는 데에는 수정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멜빈대학교의 발전, 비전, 방향은 여기 케냐 직원들의 협력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세 번째는 타문화에 알맞게 적응하는 것은 부담과 짐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부담과 짐이 된다기보다는 맞추어가는 편이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이 우리 자신이 진행하는 사역에 방해를 받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진행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잘 적응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은 위의 세 가지 도전들을 어떻게 극복해가면서 리더로서 나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소기의 목표, 최종 목적지까지 잘 도달해 가는가이다. 물론 극복하기 쉬운 것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매우 분노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비전과 방향과 목적이 서로에게 분명하게 공유된다면, 이것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상이고, 또 잘 해결되리라고 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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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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