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 지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가 이날을 ‘광복절’이라고 정한 것은 ‘어둠’으로부터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광복절은 한국교회에 있어 여느 국경일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수탈과 착취를 당할 때 기독교 지도자들이 독립 자주 구국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다. 일제강점기에 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준 헌신과 희생은 한국교회가 8.15해방과 6.25 전란을 딛고 눈부신 부흥 성장을 이루기까지 튼튼한 주춧돌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빛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기독교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데 앞장선 지도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신앙의 길을 저버리고 권력에 결탁해 호의호식한 이들 중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것은 한국교회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적 과오로 기록됐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 양심과 죄책감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닌 국가의식”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했다.
기독교 지도자 중에는 일제가 대륙 침략전쟁에 나서자 소위 ‘국민정신 총동원’의 나팔수를 자처해 지원병 모집과 창씨개명을 독려하고 전쟁헌금을 거두는 데 앞장선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훗날 교회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했으나 일제에 결탁해 신앙의 절개를 저버린 변절, 배교 외에 그 어떤 단어로도 대신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에 수다한 순교자들이 보인 신앙의 절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30배, 60배, 백배의 결실로 돌아온다는 복음의 진수를 증명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이룬 부흥 성장은 바로 그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변절과 배교의 부끄러운 증거 또한 오늘의 한국교회에 그대로 전승되었다고 해야 옳다.
부끄러운 과거를 스스로 드러내려 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스스로를 ‘장자 교단’이라 칭하면서도 과거 교단이 저지른 죄에 대해 오랫동안 외면하다 근래에 와서야 공식적인 사죄를 한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빛과 영광은 드러내면서 과거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 하면 할수록 부끄러운 과거의 시간이 연장될 것이다. 동시에 그 멍에 또한 점점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사죄와 반성이 없는 교회는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 등을 침략해 저지른 반인륜적 죄악에 대해 감추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은 전후 철저한 과거 청산을 통해 나치즘을 극복했다. 브란트 수상은 1970년 12월 6일 폴란드를 방문해 바르샤바 근교에 있는 유대인 학살 묘비 탑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전 세계가 이 장면을 독일의 진정한 사과와 과거사 청산 노력으로 인정했다. 이런 정치인이 나오도록 과거의 잘못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사죄에 앞장 선 것이 바로 독일교회다. 이런 교회의 노력이 국민와 어우러져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반면에 일본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없을 뿐 아니라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건 아직도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끄러운 과거는 덮으면 덮을수록 언젠가 더 밝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 또한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광복 77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연합기관과 교단 단체들이 저마다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기관이 주관하는 8·15 기념행사가 올해도 여러 군데로 나뉘어 열려서 실망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실체가 없는 ‘통합’ 대신 각자 따로 광복 77주년, 또는 건국 74주년을 기념해야 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우리나라를 건져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믿음의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절기를 맞을 때마다 기억하고 반추해야 할 것이 빛과 함께 그림자의 흔적이다.
이에 대해 한교연은 8·15 77주년에 즈음해 발표한 메시지에서 “복음의 본질에서 떠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언급하며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는 뉘우침과 통렬한 회개로 무조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마치 시인 윤동주가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고 했던 것처럼.
과거 일제에 불굴의 정신으로 항거한 교회 지도자들이 민족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촛불처럼 자신을 태운 희생정신에 있었다. 8·15 77주년을 기점으로 한국교회의 심장이 다시 뛰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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