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이 지역 최고의 미녀로 통하는 ‘엔젤’은 몸 파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종사하는 매춘업소는 매일같이 사내들로 장사진을 이루지요. 건실한 청년 마이클은 자신의 배우자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엔젤이라 믿습니다. 엔젤에게 진심인 마이클은 정식으로 그녀에게 청혼하지요. 남성들의 악행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엔젤에게 마이클은 구원자처럼 다가왔지만,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는 엔젤은 그를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현실감 없는 순애보
영화 <리디밍 러브>는 요즘 같은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지고지순한 순애보입니다. 하지만 그 점 때문에 진부하기 짝이 없다는 혹평도 만만치 않지요. 한결같은 남자의 사랑도 현실감이 없거니와, 학대에 시달리던 불행한 여성이 훈남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서사도 불편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캐릭터들은 모조리 평면적입니다. 마이클은 엔젤을 향해 무조건적인 관대함을 계속해서 베풀고, 엔젤 주변의 사내들은 죄다 짐승들뿐이며, 엔젤을 착취하는 악덕 포주는 너무나 전형적입니다. 서사의 개연성도 부족해서 창녀 엔젤을 보자마자 그녀를 결혼 상대로 점찍는 마이클의 모습이 관객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엔젤의 불행이 어린 시절 그녀를 버린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정은 너무나 흔한 작법이며,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엔젤의 방식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호세아서를 멜로 영화의 문법으로 변주
이 영화는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자체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호세아라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각색한 기독교 소설이기에, 뚜렷한 약점을 무릅쓰고 현실감 없는 사랑을 소재로 삼은 것이지요. 그러니 영화는 서사의 개연성이나 상업적인 만듦새보다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합니다.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고 떠나버린 아내를 다시 데려와야 했던, 구약성경 속 그 남자의 이름을 그대로 딴 마이클 호세아(Michael Hosea)입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엔젤의 본명은 불임으로 고통받던 창세기 속 그녀와 같은 사라(Sarah)입니다. 엔젤에게 몹쓸 짓을 하다가 개과천선하는 폴(Paul)은 기독교 신자들을 핍박하다가 회심한 위대한 사도 바울을 떠올리게 하죠. 마이클을 떠나 매춘업소로 돌아가려는 엔젤은 그에게 받은 결혼반지를 빼고 가는데 하필 성경책 위에 둡니다. 마이클이 양을 치는 모습은 성경에서 목자로 비유되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고, 달아났다가 돌아온 엔젤의 상한 발을 닦아주는 모습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을 그대로 재연한 듯합니다. 고통받던 엔젤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십자가를 붙잡는 장면은 영화의 기독교적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심지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OST는 미국의 CCM가수 로런 데이글(Lauren Daigle)의 대표곡 『Rescue』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선택
매춘업소로 돌아가 버린 자기를 왜 또 데려왔냐는 엔젤의 물음에 마이클은 “Because I love you”라고 대답합니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란 바로 이 대사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이클이 엔젤에게 ‘호구의 사랑’을 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클은 자신을 뿌리치고 매춘업소로 돌아가려는 엔젤을 억지로 붙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춘업소로 가는 길, 그리고 자신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둘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할지 선택권을 엔젤에게 넘기죠. 마이클은 엔젤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그녀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마이클의 모습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새 삶을 살 것이냐, 죄악으로 가득 찬 옛 삶에 머물 것이냐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자유의지 교리를 표상합니다(마태복음 17:12; 야고보서 1:14).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자를 향한 호세아의 행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투영합니다. 정절을 버린 인간들을 향해서 다시 새로 시작하자고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호세아서에 담겨 있지요. 하지만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인간의 선택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기독교의 신비한 가르침이자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예레미야 3:14)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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