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반포하고 복음을 전하며 때론 교회 선구자로도 활동
매서인 사역 지역에서 기도 모임 생기고 주일예배 시작돼
사경회에서 직접 한글을 가르쳐 성경 읽을 수 있도록 도와
예수를 위해 핍박을 받다
나의 다른 매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함으로 박해에서 용감하게 견딘 눈물 나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시골 여인 한 명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고 많은 변화를 체험한 이후였는데, 그의 며느리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죽었다.
그의 가족들은 열광적으로 미신을 신봉했었고, 복음에는 확고하게 적대적이었다. 친척들은 결론 내리기를 이 죽음은 시어머니가 가족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귀신이 분노해서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친척 간의 소원함은 더 커지게 되었고 박해는 주를 믿는 그 여인의 가족에게 더해지게 되었다. 친척들은 요구하기를 즉시 그녀의 믿음을 포기하라고 강압하고, 아주 격렬한 방법으로 그녀를 학대하고 폭행했지만 그들의 의도는 무산되었다.
그들이 그녀를 학대할수록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굽히지 않는 믿음을 외쳤으며, 하나님을 포기하라면 그 대신 죽겠다고 했다. 그의 일가친척들은 그녀에 대해 계속해서 적대적으로 대했다. 가끔은 이 불행한 여인이 믿음을 두려워하고 지킬 수 없을 만큼 특별히 심하게 매질을 가했지만, 그 여인은 구원을 부정하는 대신에 믿음이 단호해졌다. 마지막에는 그녀에게 독약을 마시게 하며 핍박했다. 그녀는 독약을 구해 마셨다.
그녀가 기절한 것이 알려지기 전에 모든 이웃 사람이 무섭게 들고일어나, 이 여인이 음독한 것은 바로 친척들의 학대에서 벗어나려고 선택한 것이었다며 친척들에게 항의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녀가 들이켠 독약은 죽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의 친척들의 마음과 태도가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녀의 생명에 해를 입지 않았음에 친척들이 기뻐했다. 아직까지도 못 믿겠지만, 친척들은 이 믿음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뭔가 굉장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더이상 여인을 괴롭히지 않았다.
이 여인은 이제 행복하고 열성적인 신자가 되었고, 구원의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알게 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품 안에 안기기를 원했다. 그녀는 모든 악조건의 날씨 속에서도 3마일의 산길을 걸어 매번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있다.
도둑의 양심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부 영(Rev. L. L. Young) 목사의 보고이다.
“우리 기독인 그룹의 한 사람에게서 내가 들은 흥미 있는 이야기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끈끈이 손가락이라 불리는 장 씨가 구약성경을 훔쳐 가 보게 되었는데 몇 달 후 그와 그의 부인이 믿기로 작정하며 그가 성경을 훔쳐 갔다고 고백했다. 이 사례에서 말씀은 공허하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도둑맞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이룬 것이다.
한 매서인은 말하기를, 사람들이 논밭에서 일할 때 그들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한 마을에 들어가면 해가 질 때까지 마을에서 기다렸다. 그는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게 되어 (이후)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매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 자주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책도 팔지 못하고 말씀도 전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른 매서인은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 ‘토마토’를 받은 경우도 있다. 그는 ‘토마토’를 가지고 10마일이나 걸어가서 쌀로 바꾼다. 그 쌀은 다음 며칠간 매서인의 식량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내가 성서공회와 사역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대한에서 매서인들의 성경 반포 사업은 그들의 열심으로 잘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 없이는 반포 사업이 불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대한에서의 진정한 복음전도자는 매서인들이다.”
교회의 선구자
매서인이 아직도 교회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번하이슬(Rev. C. F. Bernheisel) 목사의 보고이다.
“매서인 김홍년은 맹산군 서창(Suh Chang)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했고 거기에는 전에도 지금도 신자가 한 명도 없는 곳이었다. 그는 현재 책을 팔고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5~6가정이 믿고 있으며, 주일마다 10~15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조만간 회중이 늘어날 전망이 크다고 하겠다.”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인 푸트(Rev. W. R. Foote) 목사의 보고이다.
“매서인이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오는데 우리 매서인들은 그들의 손에 있는 성경이나 그들의 가슴에 있는 말씀을 사용하는 여러 사례가 있다. 한 예를 들자면 부잣집 커다란 가족의 가장이 성경 말씀에 영향을 받아 박해 가운데서도 예수를 영접한 것이다. 그가 믿기로 작정하자 반대가 무척 많았으며, 처음 2주간은 그의 소유인 그의 집에 몇 차례의 방화가 있었다. 이는 마을 사람들의 악령의 성냄이었고 이들 마을 주민이 지금까지 이 부잣집에서 받아온 대우 때문이었다. 가끔 사람은 그런 고난을 피해가고 싶지만, 그 집 가장은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해 우뚝 섰다.
아름답고 강한 성격의 그의 부인 덕분에 부인과 온 가족이 남편의 믿음에 쉽게 동조해 함께 했다. 가장의 커다란 영향력으로, 교회와 학교가 설립되었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가 그때부터 드려졌으며 회중은 늘어나고 있다.”
당나귀 ‘종달새’의 죽음
카긴(Rev. E. Kagin) 목사의 보고이다.
“매서인 김 씨의 충성스러운 당나귀 ‘종달새’가 지난해 여름 죽었다. ‘종달새’는 몇 차례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왜냐하면 이 당나귀는 성경책을 먹는 척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사지 않으려는 사람 앞에서 매서인은 그의 당나귀 ‘종달새’에게 성경을 주면서 ‘여기를 보시오, 이 당나귀가 당신보다 낫소, 이렇게 주는 것을 받아먹으니 말이요’하고는 ‘종달새~’라고 말하면 당나귀는 공손하게 입술 사이에 성경을 물었다. 그러면 상대는 웃으며 성경을 사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당나귀는 죽었고, 매서인 김 씨는 이제 그의 성경짐 보따리를 등짐으로 나르고 있는데, 우리는 조만간 그가 새로운 당나귀를 구해 함께 하기를 바란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느 날 매서인 김 씨는 멋진 화강암 협곡을 지날 때, 나뭇가지가 드리워진 바위에 앉아 있는 불자를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학식이 중류 이상은 넘었는데 기독교 서적을 읽고 있었다. 매서인은 잠언서 한 권을 판매하고 예수를 전하고는 그의 길을 떠났다.
달포쯤 지나 매서인은 다시 그를 만났고 또 성경을 판매했다. 김 씨는 그 불자와 그의 가족을 잘 양육했고, 가고 오는 길에 그의 집에 들러 성경을 판매했다. 맨 처음 그 불자는 그의 아들을 교회에 보내더니 다음에는 그 부부가, 마지막에는 그의 딸과 사위 가족이 교회로 나왔다. 최근에 그의 큰아들이 세례를 받았고, 그와 그의 젊은 작은 아들이 교리문답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은 소식을 전하기를 그의 아내는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모든 가족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가운데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백암(White Rock) 마을은 매서인 김 씨가 사역을 잘 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양반임을 뽐냈는데 양반이란 대한의 상류 지식층이다. 그들은 이미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문제는 그들은 선조들의 신앙을 포기할 수 없었고, 주일을 지키자면 그들의 부모, 친구들로부터 받는 박해를 견뎌야 했기에 개종을 할 수 없었다. 김 씨는 그 마을을 방문했고 복음서를 판매했다. 그리고 매서인 김 씨는 그중에 관심 있는 두 사람을 초청해 청주에서 열리는 성경훈련반에서 훈련 받도록 했다.
그로부터 작은 기도 모임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30명이 넘는 신자가 매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두 여인은 아주 총명했고 그들 모두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최근에 나는 그 마을 지도자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8명은 교리문답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 매서인 김 씨는 1,800마일 이상을 도보로 걸었다. 그는 6,000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신약성경과 쪽복음을 합해 1,500권의 복음서를 판매했다.
머루 넝쿨과 교환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인 왓슨(Rev. W. A. Wasson) 목사의 보고이다.
“김선채는 그의 부인과 가족을 돌보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이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서인이 그에게 전도했을 때 그는 신자가 되기로 작정했고 그는 성경과 찬송가를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집안 살림은 책살 돈을 내기에는 너무나 가난한 집이었다. 그래서 그는 산에 올라 밧줄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 산머루 넝쿨 한 짐을 지고 왔다. 그리고는 그는 이 넝쿨과 성경 찬송과 맞바꾸었다.
그는 현재 신실한 신자가 되었고, 그의 가족을 옳은 길로 인도하며, 신뢰받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
캐나다 장로교회 선교사인 맥밀란(Dr. McMillan) 의사가 보내온 그녀와 함께 일하는 매서인에 관한 보고이다.
“매서인 방 씨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모범이다. 서울에서 집까지 배로 유람 여행 중 기독교에 대해 듣고, 부산에 있을 때 병원에 가서 성경 한 권을 샀다. 1년간 읽고 또 읽으면서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신약을 숙독하였다. 그는 특별히 세속적인 것에 반한 성경 말씀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매서인을 만나 설명을 들어보니 그가 충격받은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듣고 그는 곧바로 그의 사업을 내려놓았다. 그 후에 집에 화재가 나서 남아있던 재산도 다 잃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그에게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는데, 기독교를 믿지 말거나 집을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했다.
그는 후자를 택했고,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부친 집을 떠났다. 영향력이 있던 사람에서 이제는 집 없는 빈털터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가 잘나갈 때 그로부터 선물을 기꺼이 받던 친구들은 이제 따듯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돈이 없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용직 막노동밖에 없었다. 두 번이나 그가 받았던 큰 스트레스는 좋은 직장이 나타나 결정할 때였는데 그 직장을 택하면 그의 신앙생활에 해를 끼칠까 싶어 그런 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인매서인
지난해 30명의 부인매서인이 활동했다. 그들은 6,717권의 성경을 판매했으며 93,916명에게 성경을 읽어주었고, 468명에게는 한글을 가르쳐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번하이슬(Mrs. C. F. Bernheisel) 여사는 부인매서인 이신찬이 평양시와 인근 군에서 번하이슬(Mr. Bernheisel) 박사가 맡고 있는 60개 이상의 그룹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아래와 같이 보고했다.
대한인들의 예절
“그녀는 몇몇 사경회에서 가르치고, 평양에 있을 때는 일요일마다 가르친다. 시골에서는 1주일간 번하이슬 선교사 구역에서 열리는 여러 사경회에서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낸다. 보통 사경회에 참석하는 여성들의 1/3은 읽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매일 공부 시간의 일부는 이들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다. 정규 학습과정을 따르며, 이들 부인매서인의 활동과 봉급을 받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우리 교회들을 세우는 데 가장 강력한 도움의 하나가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전도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마가복음을 준다. 어느 날 망산군(Mang San County)에서 길을 가다가 여섯 명의 농부가 입에 담뱃대를 물고 길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대한 풍속대로라면 그녀는 그냥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대한 풍속과 전도할 기회가 상반될 때, 우리의 늙은 기독교인 부인은 전자를 생각하지 않고 후자로 당당히 나아갔다. 그래서 여기에 놀라운 기회가 생겼고, 이 씨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복음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가복음서 몇 권을 꺼냈다. 남자들은 담뱃불을 끄고 주의 깊게 경청했다. 그들은 질문하고는, 책을 받았으며 믿겠노라고 말했다.” <계속>
『매서인은 교회설립의 선구자였다』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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