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한국이 지난 6일 개최한 4월 랜선수련회에서 유튜브 채널 ‘Hepbsibah Hepbsibah’를 운영하는 거리찬양사역자 임선주 집사가 찬양과 간증을 전했다.
포항의 해수욕장에서 거리찬양을 하는 평신도 사역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선주 집사는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주님을 찬양한지 10여 년이 넘어간다. 그는 “2016년, 유튜브에 올렸던 거리찬양 영상 하나가 일파만파 퍼져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주님이 이때를 예배하셨다는 마음이 든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간증과 찬양을 올려드리려고 한다”며 첫 곡으로 ‘찬송의 꽃’을 부른 뒤 “가사가 제 고백 같아서 늘 어디를 가나 부르게 되는 찬양”이라고 했다.
입 집사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어릴 적 아픔들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거리까지 나오게 됐는지를 전했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 후, 중풍에 걸린 할머니, 고모, 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가 있다는 평범한 일이 저에겐 특별한 일이 되어서 늘 엄마를 그리워해야 한다는 상황이 슬펐다. 따뜻했던 아빠가 술만 마시면 온 집안에 난리가 났다. 어렵게 지내다가 아빠와 새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집 앞의 작은 교회를 알게 되었다. 아빠가 술을 드실 것 같으면 상가 위 작은 교회로 피신을 하러 갔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교회만 가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 교회는 제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었다”고 했다.
이어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산에 있는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고, 엄마가 내 옆에 있는게 천국 같았다. 그런데 대학 생활, 세상 재미에 푹 빠져서 그렇게 경멸하던 술을 먹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데 큰 위기가 찾아왔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한 권사님의 권유로 십자가부흥회를 가게 되었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머리는 망치로 맞은 것 같았고,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셔서 내 삶을 인도해가시도록 살아가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연민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엔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마음이 들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자 큰 그림자가 제 양팔을 잡고 교수대 위로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교수대에서 목을 매달기 직전에 우리 선주는 안된다는 음성이 들렸다. 눈을 떠보니 저는 교수대 밑에 내려와 있었고, 하얀색의 큰 십자가가 보였다. 그때 에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가슴으로 믿어지기 시작했다. 기도회 시간 어린아이처럼 발을 구르고 크게 왜!왜!왜! 라며 악을 쓰고 울었다. 집으러 돌아와서 주님께 왜 그러셨냐고 여쭤보니 십자가 고통이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죽기까지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제 안에 이제 살았다는 마음과 함께 주님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이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고백이 나왔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 내 주께서’라는 찬양을 제 입에 주시면서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주셨다. 그 기쁨이 이제까지 제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계속 생각났던 게 거리였다. 저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는 힘든데, 거리에 많다. 그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었다. 언니가 있는 포항으로 왔고, 거리에서 찬양하는 분을 만나서 함께 4~5년 정도 찬양을 하다가 각자의 사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임선주 집사는 “2016년, 경주에 벚꽃 구경을 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찬양을 했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교회 청년이 SNS 스타가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많은 청년들이 댓글을 달았는데,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며 삼삼오오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진리를 진리라고 외칠 수 있는 청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게 생각나면서 하나님의 때에 일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전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왔다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다는 마음을 받았다. 미국, 캐나다, 영국, 세네갈 등 내가 갈 수 없는 곳에서 미디어를 보고 은혜를 받았다는 댓글을 읽으면서 주님이 이때를 예배하셨다는 확신을 더욱 갖고 열심히 찬양했다”고 했다.
그는 “찬양을 하니까 거룩한 삶을 살 거라는 시선과 달리 매일 주님의 손을 붙잡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어느 날 예배 인도를 하러 가기가 너무 싫었다.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네가 뭔데 예배를 인도하냐는 마음이 들어왔고, 스스로를 정죄하기 시작했다.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분이시기에 저의 쓴 뿌리를 드러내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깨끗이 고쳐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마음은 계속 정죄하고 판단하니까 제가 ‘누구야?’ 라고 말했고 조용해졌다. 그때 주님이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주셨고, 무릎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네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 이제 내 보혈을 의지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가? 주님 주시는 참 평안 외에는 다른 평안이 없다. 어떤 평안으로 우리의 정신을 혼미케 하는지 밝히 분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보혈로 덮으시고 승리하시길 소망한다. 그래서 거리에서 보혈 찬양을 할 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난다”며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을 찬양했다.
이어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저를 자녀 삼아주셨다. 자존감이 그렇게 낮았던 저에게 주님이 이사야서 62장 4절 말씀으로 확증해주셨다. 헵시바, 쁄라라고 하셨다. 쁄라는 신부라는 뜻이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신부 삼아주셨다는 것이 믿어졌고, 제 안에 계속해서 기쁨을 넣어주셨다. 그래서 제 찬양 영상을 보면 웃는 영상들이 많다”고 했다.
임 집사는 “유튜브로 알려지면서 미국에 가서 작은 앰프를 두고 찬양을 했었다. 찬양할 때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전부 자기가 신이고 세상은 맘몬이 신이야, 돈이 왕이야’라고 사단이 계속 이야기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주님께 제가 하는 일이 그냥 없어지고 열매가 맺힐 수 없는 일이냐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심고 물 주는 건 너지만 자라게 하는 이가 누구냐고 물으셨다. 눈물이 나면서 주님이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주님이 맡겨주신 그 사명을 묵묵히 해나가면 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좌절하거나 실패했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앞에 묵묵히 서가면 되고, 주님 안에 거하면 된다. 늘 성령 충만해서 주님과 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몸과 같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의 열매까지 맺힐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주님이 일하신다”며 ‘주가 일하시네’를 찬양했다.
이어 “제게 맡겨주신 일상,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귀하게 잘 보내고 주님 부르실 그 날에 주님 제가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렵다고 하지 말고 기회로 보고 좀 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함께 나아가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세상 어떤 것들이 와도 참 평안은 주님뿐이시다 세상 것들은 힘이 사라져 간다. 마지막 곡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를 찬양하겠다. 주님 붙들고 승리하며 나아가자. 찬양하며 주님 바라시는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길 소망한다”고 했다.
이어진 길원평 교수와의 토크쇼에서 임선주 집사는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십자가 체험을 하기까지의 시련들을 구체적으로 나눴다. 임 집사는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선교 훈련을 받았다. 첫 아웃리치인 스리랑카에서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밖에 모르고 내 연민에 쌓여있던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그 땅을 위해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다. 그게 십자가를 체험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였다”고 간증했다.
믿음과 은혜를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임 집사는 “중요한 건 십자가 사랑을 만나야 한다. 그게 있으면 흔들리더라도 그때 만나주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에 다시 건실히 설 수 있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힘들다고 하면 기도해라, 말씀 보라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염려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평강으로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두렵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해결해주시는 것들을 보게 하신다. 기도가 호흡이고 말씀이 양식이라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늘 끊임없는 싸움인 것 같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안 보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기도하고 말씀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고, 교만해져 있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십자가 사랑을 알고 나니까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말씀을 보게 되었다. 성령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마음의 음성이 성경에 쓰여 있는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절대 하나님, 예수님을 앞서가지 않고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정확히 듣고 움직여야 하는데, 주님의 어떤 뜻을 깨달았다 싶으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말씀을 통해서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이 각 사람마다 다양하게 일하신다는 것도 알았다. 또 앞서가야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 때문에 주춤했는데, 주님께서 네 뒤에서 지켜보고 있고 받쳐주고 있으니 앞으로 나가면 된다는 마음을 주셔서 은혜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길원평 교수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게 히트를 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통해 충분히 준비시키고 안심일 될 때 내보내셔서 사용하시는 것 같다”고 하자 임선주 집사는 “십자가 사랑을 만나고 나서 포항에 왔을 때 큰 사역들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포항에 와서 처음 한 일은 형부가 하는 횟집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 기도했을 때 1초도 안 되어서 ‘선주 너’라고 하셨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키신 일이 예배 인도였고 거리찬양이었다. 어떻게 주님과 교제하고 관계하는지를 먼저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야 사역에 지치지 않고 속지 않고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4~5년을 아무 사례도 없는 그곳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더 뜨겁게 가질 수 있었다. 어떤 제사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알고 또 인애하는 삶을 세상 가운데 보이는 것이다.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예뻐하시고 사랑한다고 늘 말씀해주시고 힘을 주신다. 저를 바라보면 못 가는데 그 주님 때문에 이렇게 계속 갈 수 있다”고 고백했다.
임선주 집사는 다양한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가 주셔서 때에 맞는 위로와 새힘을 주셔서 그 고비고비를 잘 지나가고, 감사함으로 받는 삶이 되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란다. 기도밖에 없다. 제가 그렇게 고비를 넘어왔기에 기도와 말씀을 놓지 않으면 좋겠다. 그게 힘들다면 찬양을 늘 틀어놓고, 그 끈을 놓지 않길 바란다. 아예 다 놔 버리면 한참을 둘러가게 되니, 말씀과 찬양이 늘 끊이지 않게 마음에 두시길 바란다”고 했다.
길원평 교수는 “십자가의 사랑을 만나는 게 키인 것 같다. 이 땅에 우리가 누리는 사랑은 유한하고 불완전하고 역시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을 경험해야만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 같다. 어려움에 있는 분들일수록 하나님 앞에 나가서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는 게 답이라고 간증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십자가의 사랑이 없어지는 이 시대에 십자가 사랑이 좋은 메시지가 되어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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