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최근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391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으로 개최했다. 이날 서동준(에든버러대 박사과정) 박사는 ‘복음주의 연합 정신의 발현 사례로서의 재한 개신교 복음주의 선교 연합공의회 고찰(1905~1912)’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서 박사는 “18세기, 19세기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은 영미권의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신학적, 경험적 공감대를 선사해주었다. 인격적 회심의 필요성, 복음 전파의 중요성과 같은 소위 ‘복음주의적 공감대(evangelical consensus)’는 크게 2가지 중요한 열매를 맺었다”며 “첫 번째는 해외 선교 운동의 발생이었고, 두 번째는 연합 운동의 발전이었다”고 했다.
이어 “복음주의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 연합의 시도들은 선교 본국과 선교지 모두에서 일어났지만, 특히나 선교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며 “왜냐하면 본국과는 구분되는 선교 현장의 다양한 요소들, 예를 들면 절대적 소수로서의 개신교 인구 혹은 선교의 적대적인 환경과 같은 요소들이 연합의 촉진제로 작용하여, 선교사들이 그들이 가진 차이점보다 복음주의적 공통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또 “이는 초기 한국 개신교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선교운동의 흐름 속에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을 내한한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체로 복음주의적 정체성, 즉 복음주의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던 이들이었다”며 “그리고 재한 선교사들은 이러한 공감대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연합 활동들을 벌여왔다, 1905년 설립된 재한 개신교 복음주의 선교 연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 이하 연합공의회)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연합공의회 설립 논의는 북 장로회의 게일(James S. Gale)이 북 감리회 총리사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에게 편지를 보내 선교적 연합을 위한 논의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며 “해당 편지는 1905년 6월 26일 오전 북 감리회 연례회의에서 낭독되었고, 게일의 요청에 따라 북 감리회는 장로교 선교사들과 연합 문제를 논의할 위원들을 선임했다. 같은 날 저녁, 대략 150여명의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은 북 감리회 소속 벙커 선교사(Dalziel A.Bunker)의 집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이어 “1905년 9월 11일 저녁, 장감의 선교사들은 이화학당 예배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스크랜턴은 연합 기구를 ‘즉시’ 설립하자는 발의를 했고, 선교사들이 이 발의를 통과시킴으로써 마침내 연합공의회가 설립됐다”며 “4일 뒤, 제1차 연합공의회 공식 연례 회의가 이화학당 예배실에서 개최되었고, 선교사들은 연합공의회 설립 추진을 위해 꾸려졌던 장감 합동 준비 위원회가 제안한 기관 헌장을 채택함으로써 연합공의회는 공식 연합 기구로서 그 첫발을 내딛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연합공의회의 연합의 범위는 개신교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장로교와 감리교에 국한되어 있었음과 연합공의회는 그 시작부터 선교적 협력을 넘어선 기구적 교회 합동을 추구하였다”며 “ 선교사들의 복음주의적 연합정신은 교파적 정체성과 초교파적 정체성 모두를 통해 발현되며, 이 두 발현의 형태들은 종종 긴장 관계를 이룬다”고 했다.
또 “교파적 범위에서의 연합 정신이 발현된 사례, 곧 장로교 연합공의회의 단일 장로교회 설립 운동과 단일 장로교회의 실제적 설립이 연합정신의 초교파적 발현의 사례인 단일개신교회 설립 추구의 주요한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고 했다.
아울러 “연합공의회가 지향하던 연합의 성격 변화, 곧 기구적 합동에서 실용적 협력 추구로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라며 “점차 기구적 합동의 기조로 향하고 있던 당대의 연합운동들의 근거로 연합공의회의 연합의 성격변화를 평가하자면 그 변화는 퇴보 혹은 실패로 평가될 수 있지만, 좀 더 긴 역사적 안목을 토대로 연합공의회의 성격 변화는 도리어 기독교인들의 가시적 연합은 기구적 교회 합병을 통해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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