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인과 남편의 대화다. “여보 당신은 내 인생에 로또야” “정말, 그렇게 내가 좋아?” “그게 아니라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잖아?” 이 부부에게 배신감은 그래도 애교 수준이지만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던 시저의 권력이 계속 커가는 것을 시기한 원로원은 시저의 심복이었던 브루투스를 보내 그를 살해했다. 그때 믿었던 신복에게 찔린 시저는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요한복음(69)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이후 임금이나 황제를 연상시키는 ‘교황’보다는 ‘교종’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사례가 늘었다고 하지만 둘 다 ‘교회의 으뜸’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표현도 하는데 이 호칭은 하느님의 모든 종들 중 가장 낮은 종이라는 것인지, 가장 으뜸이 되는 종이라는 것인지는 좀 혼란스럽다. 혹시 여전히 높아지려는 욕망이 반영된 호칭이라면 성경과는 거리가 먼 호칭일 .. 요한복음(68) 끝까지 사랑하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정권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베(catacombe), 지하 묘지에 숨어 살면서도 뜨거운 사랑의 교제로 그 모진 고난들을 다 이겨냈다. 어느 카타콤베의 벽에 새겨진 글을 보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 우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카타콤베.. 요한복음(67)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왔다”
근래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심판’인 듯하다. 정치적으로 그만큼 안정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요란한 아우성인 심판 주장이 이중잣대(double standard)이자 내로남불이라는 데 있다. 세계적으로는 기후 재앙으로 곳곳에서 난리다. 신자들은 이 기후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불신자들은 이 기후 재앙을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무시.. 요한복음(66) 오직 하나님께 영광!
세상을 사랑하신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셔서 계속 말씀과 표적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대인들만 믿을 뿐 상당수의 유대 엘리트들과 출교(excommunication)가 두려운 많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요한은 이런 현상을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마무리 짓는다. 그런데 미완료태를 쓴 것은 .. 요한복음(65) 십자가, 영광이다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로 시작되는데(27-28절) 어떤 기도를 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 기도와 삶은 하나이며 함께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한다. 그래서 기도 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이다. 묻는다. 기도가 사랑의 소통인가? 아니면 일방적 요구인가? 어떤 사람은 기도만 하면 운다. 눈물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상갓집 아르바이트형 기도라면 곤란하지 .. 요한복음(64) 나를 따르라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마치 최고의 인기 스타 같으셨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쫒아내신 분! 사람들은 옛날의 선지자가 다시 나타나셨다고,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분이 오셨다고 좋아하고 흥분하고 난리다. 벳새다 광야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때는 “저 분만 따라다니면 절대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들어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까지 .. 요한복음(6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열광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메시아, 능력있는 왕으로 연호한다. 아마 예루살렘 주변에서 야영하던 순례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 대열에 참여한 것 같다. 2장과 6장에 이은 세 번째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의 입장도 무리의 태도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 하지만 그날의 입성은 열렬한 환영 속에서의 입성이었다... 요한복음(62) 예수를 위한 잔치
표적의 책 마지막 장인 12장은 ‘유월절 엿새 전’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유월절, 히브리어로는 ‘페사흐’(פֶסַח), 헬라어로는 ‘파스카’(πάσχα), 출애굽하던 날 밤 하나님의 천사가 애굽의 장자들을 칠 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죽음을 면했기에 ‘죽음이 넘어갔다’라는 의미로 생긴 말이다. 영어로는 패스오버(pass over),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절, 유대 명절.. 요한복음(61) 엇갈린 반응
분열의 골이 너무 깊다. 우리 사회는 아예 분열이 고질병 된 것 같다. 본문에도 심각하게 분열된 고질병 증세가 나타난다. 늘 그랬듯이 기적의 결과는 분열, 유대인들은 나사로의 부활이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적을 체험하고도 반응이 엇갈린다. 사도 요한은 먼저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45절). 나사로 부활 현장에 있던 유대인의 일부지만 요한은 그들의 수가 많았다고 했다... 요한복음(60)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큰소리로 외치신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한 마디에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44절), 부활의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님의 ‘나오라’는 명령 때문인데 그 과정이 은혜롭다... 요한복음(59) 예수께서 우셨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부활로 바꾸시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다시 장례식 분위기로 돌아간다. 죽음이라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KJV으로 보면 “Jesus wept”, 성경 구절 가운데 가장 짧은 절이다. 우실 분이 아니다. 죄를 지은 분도 아니고, 약한 분도 아니다. 하나님이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