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인간은 물질적 차원과 초자연적 차원으로 구성된 다차원적 존재이다. 물리-화학-생물학적 차원이 물질적 차원이라면, 심리-윤리-종교적 차원은 정신적 또는 영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신론자들은 정신적, 영적 차원의 초자연적 부분을 무시함으로 인해 인간존재의 상당한 부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해 버린다.

심리학은 그리스어 어원인 ‘Psyche(영혼)+ology(학문)’가 뜻하는 것처럼 영혼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19세기 후반 등장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세계관보다 영적인 측면과 심리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본주의, 공산주의, 포스트모던의 이론들을 포함하는 현대 심리학을 검토해 보면 세속 심리학과 기독교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세속 심리학의 뼈대를 세운 프로이트, 스키너, 파블로프, 매슬로우, 라캉 등이 모두 무신론적인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들이 현대 심리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적 세계관은 초자연을 완전히 부정하지만 세속적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정신(情神)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은 ”이 무시할 수 없는 초자연인 정신이 육체와 독립적인가? 혹은 육체에 종속적인가?“라는 질문에 심신일원론을 주장한다. 정신과 몸은 하나의 근본적 실체이며, 정신은 육체적 뇌 활동의 부수현상(epiphenomenon)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신호(vital signs)가 꺼지면 인간에 속하는 초자연적 현상인 자아, 의식, 마음 등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없어진다. 인간이 죽으면 끝이므로, 죽음 이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전통적 윤리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배경에는 이런 심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자극에 대해 한 가지 방식으로만 반응하는 기계처럼 생각하는 스키너의 전통적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오직 유물론적 자연주의로만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무신론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유교는 무신론이지만 영혼과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주역에서 귀신(鬼神)은 각각 음양의 영험한 기운이기 때문에 공경하지만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가 모이면 생명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라 설명한다. 양의 영이 모이면 혼(영혼)이, 음의 영이 모이면 백(육체)이 되어 혼백이 합쳐져 생명이 된다. 반대로 혼백이 흩어지면 죽음이며, 혼은 흩어져서 하늘로, 백은 흩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심신의 독립적 존재와 근원은 인정하면서, 생명현상이 유지될 때는 심신이 합쳐져 있고, 생명현상이 끝나면 심신이 흩어지는 것은 유신론과 같다. 그러나 죽음의 결과로 영혼이 소멸하는 것은 심신일원론과 같다. 결국 모든 무신론은 생명이 있을 때는 심신의 일체화를, 생명이 없어지면 영혼은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을 지지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과 같은 유일신 종교는 정신과 육체를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육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의미의 이분법은 아니다. 성경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의 영혼은 육체까지 포함한 개인의 모든 정체성을 포함하지만,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의 영혼은 육체인 관절과 골수와는 분명히 분리된 초자연을 뜻하는 것이다. 기독교 심리학에서 말하는 심신이원론은 후자를 의미한다.

신경과 신경사이의 연접부인 시넵스의 구조와 신호의 전달에 대한 발견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신경생리학자 존 에클스 경은 심신이원론이 인간 의식의 여러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가 과학자로서 이 결론에 도달한 이유는 ”개인 정체성의 일관성 유지”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 특히 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분자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체성은 수십 년 전의 자신과 본질적으로 같다. 뇌의 내용물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이 물리적 뇌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러한 정체성의 통일성과 통합성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기억 역시 단일한 정체성의 또 다른 측면인데, 어떤 특정한 기억과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신경세포 혹은 그 속의 물질 사이에 정확한 일대일의 관계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리적 뇌보다 더 우월한 초자연적인 무언가의 존재 즉 ‘육체에 종속되지 않는 영혼’이라는 개념 없이는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의 통일성을 무신론자들이 설명하기 힘들다. 최근 뇌 과학과 분자유전학의 발달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버리는 실험이 가능해지면서 기억과 연관된다고 주장하는 많은 유전자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첫 발견자들의 희망 가득한 해석에 불과하며, 앞서 제기된 영-육간의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전통적 행동주의를 비롯한 여러 세속적 심리학 분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유물론적인 물질로만 인간을 바라볼 때, 모든 인간들은 같은 자극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나타내는 기계와 같다고 간주한다. 인간의 선택은 정해진 환경에 따라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기에 인간의 죄성을 그 환경을 조성한 창조주의 탓으로 돌리거나, 개인이 아닌 환경 혹은 개인을 둘러싼 사회로 전가하게 된다.

반면 기독교의 심리학은 아담 이래로 타락한 인간의 영혼 문제를 제기한다. 프랜시스 쉐퍼는 인간 심리의 근본적 문제는 “스스로 피조물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대신 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한 것”이라 규정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시고 그 의지를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인간이 그 의지를 사용하여 불순종을 선택한 것이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며 (렘 17:9),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시 14:1)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심리학만이 인간의 영혼, 마음, 의지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깨닫게 할 수 있다.

묵상: 정신은 뇌의 생화학 작용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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