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연말이 되어 지난 한해를 되돌아 볼 때 흔히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올해는 그 의미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첫 발생한 올 초 만해도 오늘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스, 메르스 등 한때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유행병을 몇 차례 경험했던 터라 이번 코로나19도 그 정도 수준에서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전대미문의 상황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문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 이런 걸 염두에 둔 것을 아닐 테지만 그런 나라에서 우리가 매일 매일 살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고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천명 이상씩 늘어나는 이때에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은 더 캄캄하다. 대면예배, 비대면예배라는 생경한 신조어마저 익숙해져가는 요즘에도 기독교 신자가 교회에 가서 예배조차 마음대로 드릴 수 없는 현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불편하고 낯설다.
그런데 이제는 주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누군가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교회를 폐쇄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 목회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배드리는 것도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배드리는 것이 범죄단체가 모이는 것인가? 교회가 어쩌다 범죄단체 취급까지 당하게 되었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구시는 28일 예배를 강행한 모 교회를 고발 조치한데 이어 12월 30일에 교회를 강제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국회에서 통과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의하면 자치단체의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했을 경우 장소나 시설을 강제로 폐쇄하고 간판을 떼어낼 수 있다. 즉 교회를 폐쇄 조치하고 십자가와 교회 명패도 떼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그동안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담임목사는 “종교적 신념(신앙)에 따라 예배를 드렸다”고 경찰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성탄절에도 예배를 드리다가 또 다시 고발되었고, 개정된 감염병 예방법이 시행되는 12월 30일에 교회가 폐쇄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이게 됐다.
교회가 방역 당국의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폐쇄할 수 있는가? 라고 한다면 개정된 ‘감염병 예방법’에 의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단 한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은 교회를 단순한 법 적용으로 처벌하고 강제 폐쇄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방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따른 책임, 즉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무조건 교회를 폐쇄하는 것은 법 취지를 뛰어넘은 과잉 징벌에 해당된다.
사람이 죄를 지어 처벌을 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을 법의 기준 없이 마음대로 과중하게 처벌하던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난 제도다. 그런데 죄형법정주의에도 평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방역당국이 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기준에서 교회는 온라인예배를 원칙으로 예배당 안에 20명 이하만 허용된다. 그런데 대형 마트와 백화점 등은 인원 제한이 없다. 강남의 유명백화점 유명브랜드 한정 판매 행사에 수 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고, 교회 예배는 20명을 초과해 50명이 드렸다고 처벌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런 점에서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 감염사태는 교회를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낙인찍고 감시와 고발을 일상화해 온 정부와 자치단체의 두 얼굴과 민낯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동부구치소에서는 11월 27일 첫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한 달 만에 769명이 무더기로 확진됐다. 단일 시설 최고기록이다.
교정시설이 한 순간에 ‘코로나 지옥’으로 변한 사태 앞에서 예산이 없어서 마스크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구치소 측이나 주무관청인 법무부와 서울시, 구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국민들은 왜 교수들이 올 한해를 아시타비(我是他非), 후안무치(厚颜無耻)라는 사자성어로 정리했는지 공감했을 것이다.
한 해를 되돌아볼 때, 우리 사회는 1년 내내 갈등과 대립이 이어졌고, 내편 네편 편 가르기는 일상이 되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협치를 내던지고 오만과 독선의 정치를 정당화했고, 야당은 국민에게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도 무력했다. 세상에 공의를 선포해야 할 교회마저 코로나 사태 앞에서 움츠리고 국민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할 일이다.
코로나 지옥으로 변해버린 동부구치소 한 재소자가 써서 창문 밖으로 흔든 쪽지가 국민들의 가슴의 아프게 했다. 지은 죄로 벌을 받을지언정 그들도 엄연한 인권이 있는 국민이 아닌가. 그들이 세상을 향해 “살려주세요”라고 외친 그 한 마디가 온 교회와 성도들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올 한해 각기 다른 삶의 현장에서 내지른 비명소리처럼 처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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