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하면서 장엄하게 시작합니다. 자연과 인간과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을 도외시하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기능론적으로 이해하면,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지상 대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생명체를 인간의 관리에 맡겨 두시고, 어떻게 이름 짓고 어떻게 이끄는가를 관심 있게 보십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입니다.
인류의 존재 의의와 목적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을 귀하게 대하고 증진시키는 일입니다. 살육과 파괴는 본래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적인 업무, 본연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안에 구현해야 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생명 존중과 생명 구원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생명 대신 죽음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기독교인은 이 땅 위에서 생명의 역사를 일구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다시 복권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할 일이 우리의 어깨에 짊어져 있습니다. 생명(LIVE)을 거스르는 모든 것은 곧 악(EVIL)입니다. 우리는 악을 물리치고 선을 증진해야 합니다.
1. 코로나19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다시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온 재난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의 탐욕과 자연 파괴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바이러스의 공격은 향후 더 빈번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인류를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계 위기는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문명이 가져온 위기, 가치의 위기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누리는 번영은 생태계 파괴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들입니다.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한 성장을 기한다는 인류의 꿈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자연의 자정 능력은 한계상황에 달하였고, 자연생태계는 균형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아 온 우리의 가치관에 대한 반성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의 근본적인 극복은 생명존중 운동밖에 없습니다. 재화나 시간이 많이 드는 화학 백신보다 생태 백신이 더욱더 근본적이고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중심적인 물질주의적 세계관에서 창조-생태주의적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진보주의 사고에서 한계선 존중의 사고로, 물질주의적 가치관에서 생명적 가치관으로,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공동선 존중의 사고로, 탐욕적 인생관에서 절제의 인생관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에서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친족 관계를 이룹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생적인 세계입니다. 피조물들이 인간의 탐욕 때문에 탄식하여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롬8:22). 구원에 대한 예언적 비전은 인간뿐 아니라 창조물 전체의 조화, 온전함, 평화입니다(호2:18, 골1:16~1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생명의 존엄과 더불어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생명의 지킴이’입니다. 생명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덕목을 개발하고 생태학적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생명의 연대성을 깨닫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생활양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생명 앞에 겸손하게 서로 섬기며, 양육하고, 돌보는 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2. 대한민국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랑스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코로나 진단 세계 1위, 인터넷 속도 세계 1위, 배달문화 세계 1위, 조선해양 세계 1위, 인구 대비 특허출원 세계 1위 등등. 그러나 OECD 국가 중 자살률, 낙태율 1위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자살자가 38명(2019년 통계청 발표)으로 10~3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 생명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집단 본위적인 자살이 많았지만, 이제 산업화와 도시화와 더불어 개인의 권익이 신장되면서 자기 본위적인 자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생존경쟁에서 살 수 있는 자만이 살게 하라”는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와 구호는 사회를 약육강식의 격전장으로 전락시킵니다. 경제적인 풍요는 ‘삶의 신성’보다 ‘삶의 질’(quality of life)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하면서 ‘살 가치가 없는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주입해서, “이렇게 살 바에야…”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조장 내지는 방조합니다.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자살을 ‘죽을 권리’라는 일종의 권리 행사로 포장하여 미화합니다. 이것은 안락사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 권리”는 있어도 “죽을 권리”나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생명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3. 한국에서 낙태는 매일 3,000명, 일 년에 110만 명의 태아(2017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발표)가 살해됩니다.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에 의해서 이렇게 사실상 무제한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고, 낙태죄로 기소된 건이 거의 없는데도, 정부는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법을 만드는 입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부모에 의해서 가장 안전해야 하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기를 보호할 어떤 힘도 없는 가장 작은 자를 찢어 끄집어내 버린다는 것은 문명 세계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는 생명 경시 풍조와 무분별한 성적 타락을 불러올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 즉 모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유전인자가 형성되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태아는 출생까지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밟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된 배아는 독립된 유전자(DNA) 배열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명체입니다. 과학과 성경은 인간의 삶은 수태된 순간이란 점에서 일치합니다. 생명의 문제는 사회공리적인 입장에서 접근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논의 중인 “언제냐”(14주? 24주?)보다는 “어떻게”라는 관점의 논의가 증대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낙태를 합법화하는 대신 건강한 성과 생명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출산 양육이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미혼모 쉘터나 장애인 돌봄, 그리고 입양 같은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여 생명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낙태는 생명 경시 사상과 아동학대로까지 이어집니다. OECD 최저 출산율을 보이는 우리나라는 사회공동책임 구조로 우리 아이라는 인식하에 임산부를 보호하는 사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임신으로부터 출산, 양육까지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나, 어떤 권리도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낙태한 여성의 경우도 육체상의 위험부담, 정서적인 심리적 잔향이 심대합니다. 낙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산부인과를 찾을 때 의사가 낙태를 반대하는 생명을 존중하는 의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살릴 의무’는 있어도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를 죽이는 것은 인간에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을 제하는 죄악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존중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목회는 ‘모태에서부터 천국까지’ 삶의 전 과정을 돌보는 ‘총체적 돌봄 목회’(Total Care Ministry)가 되어야 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를 필두로 하여 차별금지법, 낙태 문제로 혼란스럽습니다. 각자는 막강한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고 현혹시킵니다. 성경은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에 둡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하나님’이 아니라 ‘생명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자연과 이웃과 나 자신과 태아의 생명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한기채 목사(한교총 상임회장,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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