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북측 해상에 표류 중인 우리 국민을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그 시신을 즉석에서 불태워 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6시간 동안 그 광경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이 자진 월북한 것일 수 있다며 죽은 사람을 다시 한 번 부관참시했다.
북한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은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으로 소연평도 해상에서 순시선을 타고 꽃게잡이 불법어로 단속을 하던 중이었다. 군 당국은 그가 배 안에 신발을 벗어 놓았고, 채무가 있었다는 것을 들어 자진 월북설을 제기했다. 아이 둘이 있는 가장이 빚 2천만 원 때문에 다 월북을 하면 아마 대한민국에 남아 있을 가장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세간에 퍼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공분에 가깝다. 그게 맞다면 자진해 월북한 사람을 잔인하게 총을 쏴 죽이고 불태운 북은 뭐가 되나.
우리 국민이 끔찍한 개죽음을 당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국가 안보 비상시에 소집하는 NSC는 대통령이 아닌 청와대 안보실장이 주관했다. 참으로 태평성대다. 국민 한 사람이 총맞아 죽은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은 이에 앞서 영상 녹화로 진행된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2년 만에 다시 제안했다. 대통령에 보고를 하고도 군이 아무 조치도, 발표도 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인가.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북이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북을 두둔했다. 그럼 이런 잔인무도한 인명 살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고 한 남북 군사합의에서 민간인을 총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게 위반이 아니라니 제 정신으로 할 소린가.
국민이 이번 사건에 분노하고 치를 떠는 것은 북한의 만행도 만행이지만 정부의 변명과 안일한 인식 때문이다. 북은 늘 그래왔다. 6.25 남침 이후 휴전협정에 의해 38선이 그어졌지만 끊임없는 군사도발을 감행해 왔다. 민간인 살해는 2008년 금강산 관광도중 북한군에 피살당한 박왕자 씨에 이어 두 번째지만 판문점 도끼만행을 시작으로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 목함지뢰 도발 등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북한의 이런 고질적이고 반복적인 만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평화’ 구호에 파묻혔다. 미사일 발사를 해도 우리도 미사일 발사를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오히려 북한의 기를 살려주었다. 북이 미사일을 쏘든 말든 우리 정부는 대북 지원에 더 열을 올렸다. 따지고 보면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포옹하고 두 손을 맞잡는 순간 북한에 핵무기도 사라지고 제 형과 고모부까지 잔인하게 살해한 자도 천사로 탈바꿈하는 그런 몽환적 평화론이 오늘의 비극을 낳은 셈이다.
국내 여론이 악화되고 국제사회까지 북한의 만행을 소리 높여 규탄하는 분위기가 되자 청와대는 지난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왔다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화답이라도 하듯 여권에서 일제히 남북관계 전환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싶더니 이쯤에서 사건을 덮을 생각인가 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건 발표 직후에는 야당과 함께 국회 차원의 대북결의안 채택을 논의하겠다고 하더니 북이 보내온 면피성 친서 한 장에 어느새 꼬리를 감추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은 여권의 이런 분위기와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국민이 억울한 개죽음을 당했는데 북한 눈치나 보며 적당히 덮을 일이냐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마치 북한 대변인처럼 표변하는 것에 더 비분강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이 탈북인권 단체의 전단지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우리 정부와 북 당국자 사이에 모든 연락 수단이 끊긴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론이 점점 더 악화되자 이 사건 이전에 이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친서 교환이 두 차례나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북한의 만행을 통제할 방법도 수단도 없었다는 군과 정부의 발표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얼마든지 북측에 긴급 연락을 취해 해상에 표류중인 우리 국민을 북이 안전하게 돌려보내도록 조치를 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들의 광기를 멀찍이서 구경만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남북 간의 연락망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할 바에야 대체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그 시신을 불태우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군대, 국민이 북한 해상에서 총에 맞아 사살되고 그 시신을 불태웠다는 보고를 받고도 아카펠라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고,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는 북한의 야만적인 행동을 비판하기는커녕 ‘평화’만 6번이나 강조한 군 통수권자, 이들은 대체 어느 나라 군대, 대통령이라서 이토록 태연한가.
우리 국민을 무참히 살해한 북한군의 최고통치자가 보내왔다는 편지 한 장에 감격해 “계몽군주” 운운하며 국민의 참담한 죽음을 조롱하고, 실족이 아닌 “자진월북설”로 그 유가족과 특히 두 어린 자녀의 미래에까지 그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사람들이 이 땅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스스로 민주화를 이룩한 주역인체 하니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