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묵직합니다.
일하고,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기 위하여
경배, 희생, 긍휼의 믿음을 신뢰합니다.
고난조차도 감사하면서 비틀거리며 나아갑니다.
요즘처럼 크리스천임을 밝히는 것이 창피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왜 교회에 다닙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하는가? 가장 많은 응답은 ‘행복하기 위해서 나간다’이다. 구원 받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많은 죄를 짓기 때문에 한 번은 씻으러 간다. 가정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사람 사귀고 사업에 유익이 될까 해서 나간다. 외국에 사는 교민들은 대부분 교회에 나가는데, 외롭고, 사업이나 삶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각자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교회에 다니는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신자의 공동체이다. 신앙의 눈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하나의 영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미지로 포도나무 가지, 그리스도를 초석으로 하는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기에 사도 바울이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교회는 주(Lord)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증언하는 곳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앞에서 인격적인 예배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하며 교인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성실하게 준행한다. 날 위해 죽으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다.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칭찬과 명예의 과시욕,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열심 등으로 교회를 다닌다면 분명 넌센스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
위험하고 세상적인 편견을 극복하기
코로나 공포의 재확산 주범으로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목받고 있다. 몰지각한 행동 의 결과라지만, 이로 인해 기독교도인들의 신앙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고 싶다는 분들을 쉽게 접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인즉 첫째, 천주교는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개신교는 덮어놓고 믿으라는 식이다. 둘째, 개신교는 찬양위주의 예배로 묵상과 성찰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셋째, 개신교는 헌금을 강요하고 헌금을 많이 내야 직분과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넷째, 개신교는 개인적인 사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섯째, 개신교는 성숙하지 못한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여 세상을 근심시킨다. 여섯째, 개신교는 사회에 헌신과 수고하기보다는 말만 앞세우고 배타적이다. 일곱 번째, 개신교는 설교 중심으로 깊이가 없고, 많은 교회와 교파로 나눠져 서로 싸우는 모습에 염증을 느낀다.
그밖에도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 세속화 그리고 탐욕에 실망한다.” 기독교인들의 생명은 성령 충만한 실생활과 교회생활의 일치임에도 무늬만 기독교인이 많다는 증거다.
이기적 사고와 속박에서 벗어나서,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즐거워하자. 하나님의 영을 깨닫고자 하는 순전한 믿음을 회복하는 길이 한국교회가 살 길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정작 죽어서 하나님이 모른다고 할 경우를 생각해 보았는가? 절약과 구두쇠 소리 들으면서 헌금을 교회에 아낌없이 바쳤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여 지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에서 예배와 봉사를 했지만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없을 것이다.
교회 생활이 교회 자체에 빠져서는 안 된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전도가 중요하며 지금 여기서 선교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라. 헌금하는 이유가 복 받기 위한 거래의 일종이며, 남을 긍휼히 여기고 자기 소유를 드리는 사랑 대신에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않았는가? 이런 형태의 교회생활은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 성경을 읽지만 예수를 만나기 위함보다는 통독 횟수에 만족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회학자 래리 크랩은 저서 ‘교회를 교회 되게’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교회에 가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주된 메시지다. 그러나 그 메시지 때문에 교인 수는 늘지만 그리스도인은 줄고 있다.”
교회는 행복보다 더 큰 목적인 믿음에 있다. 거룩하고 희생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믿음이란 성경에 나타난 사실을 단순히 믿는 것 이상으로 도덕적인 일과 영적인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믿고 의지해야 함에도 반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사도로 산다는 것은 자기의 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자질이나 훈련으로도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부름심의 역사이다. 세상 경영의 원리를 영의 시계에서 맞추려고 하는 것은 헛되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며, 참된 기독교인은 외적 가치와 사회적 평판을 믿지 않고 외모의 기만에도 속지 않는다.
김진혁 박사(시인,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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