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낫고자 하는 의지’는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요한복음 5장을 보면 38년된 병자가 나온다. 1년도 2년도 아니고 무려 38년이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오랜 병을 앓고 있는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던진 물음은 ‘낫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나? 욕이라도 먹지 않을까 싶지만, 이 질문은 지금 이 환자에게 있는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치료의 현장에 있으면, 아프지 않길 간절히 원하지만, 아프지 않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환자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상담을 할 때 ‘치료의 역할’과 ‘환자의 역할’을 구분해서 각자 해야 할 부분을 잘 나눠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떠맡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베데스다의 중풍병자처럼 말이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5:7)
그는 나를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고 원망하고 있다.
한달 전쯤 25살의 여성이 찾아왔다. 160cm에 37kg의 비쩍 마른 몰골이었다. 환자는 소화불량으로 인해 3개월동안 8kg이 빠졌다고 했다. 문제의 시작은 위산분비억제제 였다고 한다. 위내시경 결과 약간의 위염이 보였고, 위산분비억제제를 처방받아서 복용했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소화가 안되기 시작해서, 처방받은 약을 한달간 복용하고 난 뒤로는 극도의 소화불량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 환자는 소화가 안되니 밥을 거의 먹지 않았고, 너무 힘들기 때문에 휴학을 한 상태였다. 약을 복용하고 나서 이런 문제가 생긴 트라우마로 더 이상 어떤 약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는 늘 엄마를 동반해서 나타났는데, 얼마전 자살하겠다는 메세지를 엄마에게 보낸 뒤로, 환자의 엄마는 무척 불안하고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환자를 보고 나서 그가 깨끗하게 나아서 건강한 청년기를 보낼 날을 그려보며, 반드시 회복되도록 도우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내가 처방한 약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1~2일 뒤에 오라’는 얘기를 하면 일주일쯤 뒤에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3~4번 반복하며 한달이 지났고, 환자는 자신의 소화상태가 호전되지 않음을 문제 삼으며, 정신과에 가야하는 것이 아닌지 상담을 요청하였다.
“우울증으로 소화가 안될 수 있나요?”
“있죠”
“그럼 정신과에 가야 할까요?”
“정신과에 가서 약을 지어주면 먹을 꺼예요?”
“아니요…. 약을 줄까봐 정신과에 못가겠어요”
“정신이 문제인지 소화가 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소화가 안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 아닌가요?”
“네.. 소화가 좋아지면 좋아질 것 같아요”
환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무엇인가를 시도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낫지 못하고 있으니 뭔가 다른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는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확실히 낫는 법을 알 수 없었고 어떤 치료법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고민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환자는 어떤 시행착오도 없는 치료법을 찾고 있었으나 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몸의 근육은 ‘use it, or lose it’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위장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않게 된 것을 시작으로, 3개월에 걸쳐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 위장의 근육은 그만큼 활동성이 떨어지게 된다. 죽만 오래 먹거나, 소화제를 계속 먹는 것을 권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래서 다시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활동하도록 만들려면, 치료와 더불어 식사를 규칙적으로 천천히 늘려나가는 고통스럽더라도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며칠 뒤 환자는 스트레스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신과에 가야하는지를 결정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였다. 기계로 하는 스트레스 검사 결과치가 환자의 스트레스나 심리상태를 모두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스트레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사실 비정상으로 나왔어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얘기해줄 생각이었는데, 얼마나 잘 되었는가. 결과를 듣기 위해서 엄마를 대동해서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에게 얘기해주었다.
“다행이네요. 환자분은 병을 이겨낼 정신력은 있네요”
“네? 그게 무슨….”
“자 보세요, 스트레스 지수가 정상이예요. 마음은 정상이지만 몸이 문제인 거예요. 그리고 환자분의 정신은 충분히 병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엄마는 크게 안심하는 듯했다.
“너무 잘되었어요!”
그러나 환자의 반응은 달랐다. 눈이 커지면서 눈물이 고이고, 원망의 눈빛을 띄었다.
“원장님 제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데”
나는 그동안 그의 약함을 인정하고, 공감해오면서 환자의 치료경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동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더 강해져야 한다.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고, 몸은 종잇장처럼 약해져 있어도 정신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일으키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좀 억울할 수도 있어요. 지금 마음이 아픈 건 몸이 힘들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환자분 안에는 그걸 극복할 정신력이 있어요.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그 정신력을 드러내야 해요. “
환자는 내 말이 불만스러운 듯했다.
“아니 원장님, 병이 3개월간 안 나은 것은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3개월간 환자분은 뭘 했는데요?”
잠깐 말이 없었다. 소화가 안되면 굶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어준 약 먹었어요?”
“아니요. 무서워서 못 먹었어요”
“3개월간 극도로 힘들었던 것 이해해요. 그렇지만, 이제부터 내 몸을 내 아기라고 생각해보세요. 아기가 아프면 엄마는 어떻게 할까요? 엄마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아요. 아토피가 있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는 몸에 좋으면서도 맛있게 먹어낼 수 있는 음식을 최선을 다해서 찾아서 해줘요. 환자분도 그런 식으로 내 몸을 돌봐야 해요. 약한 아기를 튼튼하게 만들려는 엄마의 마음으로 자기 몸을 돌아봐야해요. 그동안 몸을 돌본 적 있나요? 살면서 늘 위에 좋은 것만 먹었어요? 아니죠. 그러면 내 탓도 있는 것이지요. 위가 낫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했나요?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고 고치기 위한 시도를 해야해요”
환자의 눈빛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환자가 혹시 집에 돌아가서 모든 치료를 포기 할까봐 한편으로 염려가 되었지만, 그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5:8)
이 말씀이 생각났다. 38년을 중풍을 앓았던 베데스다의 환자… 사람은 한달만 누워있어도 많은 양의 근육이 손실된다. 그런데 무려 38년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면 근육은 거의 말라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정상인처럼 걸었을까? 아닐 것이다.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기처럼 걸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네 자리를 직접 들고가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자리를 들고 스스로 계속 계속 걸어야만 근력이 전처럼 회복될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잘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의 부축은 그의 회복을 더디게 할 뿐이다.
몸이 병에 억눌렸다고, 정신까지 억눌려서야 되겠는가.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는 아주 특별한 해결책을 기다리기 전에, 지금 자신이 해야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로 그 일을 해야한다.
환자와의 상담을 마치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 힘을 더하셔서 이를 계기로 환자가 더 성장할 수 있게 되길, 또한 그의 몸에도 역사하셔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더하시길 기도했다. 베데스다의 중풍병자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는 (요5:9) 말씀과 같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이 병을 이겨내고 난 다음엔, 그는 쉽게 절망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떤 일이든 도전해서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지예 한의사(성누가병원 한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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