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는 '자유'와 '평등'이다. 보수는 평등보다 자유를 강조한다면, 진보는 자유보다 평등을 더 강조한다. 자유를 강조하면 '자유민주주의'가 되고, 평등을 강조하면 '인민민주주의'(공산주의)가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평등보다 자유를 강조하면 흔히 보수라 한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를 단순히 '자유'라는 용어 하나만으로 구별하려는 태도는 그다지 적절치 않다. '자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 보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용어는 보수진영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분류된다. 이것이 현재 미국 정치권을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하게 한 기준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진영도 주사파 정권이 무너지면 자유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보수당과 진보당으로 양분될 수 있다. 만일 보수진영이 자유에 대한 이런 개념을 지금부터 정립하지 않는다면 끔찍한 혼란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아직 '자유'에 대한 용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다. 대한민국의 정치 대란의 본질은 이념(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호세력과 대한민국 전복세력(주사파/북한)이라는 '두 체제 간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대한민국 수호세력의 승리로 끝난다면 그다음은 '자유'라는 용어를 다르게 이해하는 철학적 대립(싸움)이 시작된다.
'자유'라는 용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유'(自由)와 '자율'(自律)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자유'는 법이 제한하는 범주 안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마치 물고기가 물 안에서 자유롭게 누리는 자유와 같다. 또는 자동차가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어디를 어떻게 가든지 제한받지 않는 자유와 같다. 이것이 영미국가의 보수정치가 추구하는 자유 개념이며, 대한민국 보수당이 추구해야 할 개념이다. 이것을 '정의 안에서 추구하는 자유'라 한다. 버크는 "자유와 정의가 함께 서야 하며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그 유지 불가능하다"는 말로 표현했다1). 영미국가에서 추구하는 자유는 정의가 훼손되면서 추구하는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러셀 커크는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고 했다2).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없는 자유는 죽음인 것과 같다.
이제 '자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율'은 한자 그대로 '자신(自)이 스스로 법(法)'이 되는 것이다. 자유의 범주를 외부의 법이나 보편적 정의가 규정하지 않는다. 물고기의 자유를 물이 규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와 자유주의(Liberalism)로 갈라진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자율'의 범주 안에서 자유를 말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때문에 '법의 제한'보다는 '개인의 권리'가 강조된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최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한 말은 '자율'의 개념을 잘 설명해준다3). 과연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있는 것이 권리인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버크가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존재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권리는 법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한 주장4)은 자유주의자들(리버럴)이 추구하는 자유가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얼마나 다른지,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가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과 동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이 관점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이 나온다. 법의 제한보다 '개인의 자율적 권리'가 강조되면서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권'을 강요한다. 평등과 인권이 강조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성은 차별이라는 명목하에 공격받는다. 결코, 평등이라는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남자와 여자, 인종 등을 평등으로 강제한다. 평등이라는 잣대로 차이와 다양성, 조화는 금기가 된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억압받고, 평등의 권리로 자유의 권리를 침해한다. 더 나아가 성경이 분명하게 금(禁)하는 간음과 동성애도 용납된다. 미국 민주당이 이 입장이다. 오바마 행정부 집권 당시 법원에서 동성혼을 허용한 원리가 이것이다. 법원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이 아니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를 법원이나 국가, 더 나아가 성경이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인의 자율적 권리로 해석했다.
진짜 혼란스러운 것은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리버테리언)다. 이들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자유와 자율의 관계로 분류한다면 분명히 '후자'(자율)로 분류된다. 개인 자유를 사회 기본 구성 원리로 삼기 때문이다5). 이들은 경제적 이슈에선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그러나 마약과 포르노의 합법화, 동성애 제한 철폐, 검열 반대 등의 입장은 리버럴과 궤를 같이한다6).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는 막스 베버가 말하는 근대 자본주의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가 될 것이 분명하다. 두려운 점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칭 보수라고 하는 유명 유튜버들, 지식인들, 언론인들, 정치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유방임주의'(리버테리언)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보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에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부류의 리버럴(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내 돈 내가 어떻게 쓰든, 간통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마약과 포르노에 심취하든 자유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구체적으로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굳이 개인의 도덕성과 취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 보수진영에서 주사파들을 대항하여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안에서 일어나는 두 체제 간의 대립은 끝날 것이다. 그 후엔 자유에 대한 철학적 이해 차이로 인한 전쟁이 일어난다. 이 문제의 해결 열쇠는 교회에 있다. 미국처럼 한국교회가 복음으로 법이 제한하는 자유를 선언하고,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복음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가르친다. 범과 진리 안에서만 자유가 있다는 사실은 정치나 시스템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미 국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바른 복음을 통한 기독교적 풍토의 확산만 가능하다. 보수 기독교는 앞으로 닥칠 더 큰 싸움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미주
1) 러셀 커크, 「보수의 정신」, 이재학 역, (지식노마드, 2018), P.86.
2) Ibid., p.209.
3) Ibid., pp.128-129.
4) Ibid., p.128.
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4932.html
6) Ibid.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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