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故 하용조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렵고 힘들고 가난할 때는 겸손하다. 최선을 다해서 고난의 벽을 뚫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비교적 싸움도 적고, 이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에 여유가 생기고, 돈이 생기고, 환경이 좋아지면 겸손이 교만으로, 감사가 불평으로 목소리가 커진다. 인간의 위기는 실패할 때가 아니라 성공할 때이고, 가난할 때보다 부유할 때이고, 병들어 있을 때 보다 건강할 때이고, 무명일 때보다 유명해졌을 때이다.
예수님의 생애의 위기는 '기적을 베풀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때'였다. 마4:23~25에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베풀고 인기가 많았었는지 알 수 있다.
여러분의 사역도 성령의 터치 그리고 말씀의 터치가 있은 후 부터는 설교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 성령과 말씀, 이 두 날개를 달게 되면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마5~7장에서는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 설교가 나오고, 마8장에 보면 많은 병자와 기적의 사건이 나온다. 아무래도 이 당시 언론이 없다고 해도 예수님의 대한 소문은 확산되어 신드롬을 일으켰을 것이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커졌다. 이것이 예수님께는 위기였다는 것이다. 마귀의 시험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하다. 마귀는 마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격하기가 쉽다. 그런데 공격하기가 어려운 것은 인기와 성공이며, 천사로 가장한 것이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위기는 사복음서에서 인기와 성공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예수님의 자기관리 시스템을 통해 해결 방법을 엿 볼 수 있다. 막1:35을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되어 있다. 새벽을 깨우는 자가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침묵하였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안에 있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섰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비밀이다.
성경 본문 전에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사건이 나온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기적을 체험한 주님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지도자가 되었으면 했었을 것이다. 마6:45~46의 기적의 사건 이후 예수님은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성공과 승리의 약한 우리는 그것을 만끽하려고 한다. 먼저는 흥분했을 제자들을 재빨리 배를 태워 보내시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힘을 과시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는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이성보다 감정이 가깝고, 오랜 기다림 보다 성공이 중요하다. 이런 시험이 비단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무리들을 흩으셨다.
마6:47~48에서 중요한 단어는 '홀로'이다. 홀로란 뜻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이다. 침묵 속에 계시며 고독을 선택하셨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여론과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진정한 리더는 선택에 있어서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침묵터치를 선택을 했기에 어떤 시험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성령터치가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이요, 말씀터치가 마귀의 시험을 꺾은 비결 이였다면, 침묵터치는 인기와 성공과 사람들의 환호의 시험을 꺾는 비결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인정해주고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우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침묵한 자리에 서지 않는다. 사람에게 보호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독대하는 오랜 침묵을 하는 방법에서 중요한 것이 ‘금식’하는 것이다.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눅22:39에 보면 감람산이 나오는데 예수님은 기회가 나면 산에서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곳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한 것이다. 여기서 배워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우선순위’를 잘 지켜야 한다. 사역보다도 예배가 중요한 것이다. 예배가 없는 사역은 탈진하는 것이다. 궁중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환호성이 아니라 침묵이고, 열매가 아니라 뿌리가 중요하다.
빌1:20~21 두 번째로 침묵터치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의 포기보다 위대한 선택은 없고, 나눔보다 더 큰 소유는 없으며, 죽음보다 위대한 삶은 없는 것이다. 영원한 기쁨을 우리는 많이 놓치고 산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즉 앞으로 가는 것이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포기하지 말라. 드디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고독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라. 여러분의 작은 고통 그것이 커 보이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으로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시간이(고독의 시간) 내게 왔다면 축복의 시간으로 이해하길 바란다. 내게는 화려한 일 보다는 주님을 만나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기적 속에서도 승리했던 비결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바란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