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 불행한 삶을 원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위하여 힘쓰고 노력 한다. 그런데 행복을 누리는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이 더욱 많은 것은 왜일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행복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요. 또한 영광을 받으실 분도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성경을 보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솔로몬 왕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도리어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 고 고백했다. (전1:2)) 그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었고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었다는 결론 을 내리고 있다. 한 마디로 일평생을 바람을 잡는 듯 헛수고만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 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죄 때문이다.
이 죄는 모든 인류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결국 모든 인간이 죄인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살게 되었다. 사람들이 결국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난 이후 인간 속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령이 들어와 왕 노릇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상은 점점 더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이 죄 가운데 사는 인간에게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누릴 행복을 오늘 본문 6-7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신명기 33:29절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 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 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 중에 있었고.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한 사람들 이라고 선언 한다.
이는 여호와의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받은 백성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이라는 교수가 진통제를 발견하여 당시의 과학계에서 역사 이래 대 발견이라고 찬사를 받았다. 그가 한번은 강의시간에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소중한 발견은 무엇 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심프슨은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예수님께서 죄인 된 나를 구원 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라고 대답 하였다고 한다.
로마서 8::33-34절을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은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 시니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4:6절에는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아무 신이나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시는 것이 영원한 복이요.영생케 하시는 것이 행복 중에 행복이요 은혜)중 은혜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께만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의로운 일을 해서 구원받는 다고 생각 하거나 시간적으로 오래 믿었다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 하거나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 받는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는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절대 적이고 무조건 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없이는 불가능 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둘도 없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란 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 하셨다(마28:28). 예수만이 구주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비록 혼자 있어도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그러기에 외로울 수가 없다.
예수님이 함께 하실 뿐만 이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
고전 3:16절을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를 손댈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몸은 세상에 있다 하여도 행복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어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주신 법인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 그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을 자초 하게 된 것이다.
구약의 다윗은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범죄 할 때가 있었다.
그가 범죄 하였을 때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시편51:12절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다.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자가 있는가?
바울은 본문에서 믿음이 행복의 조건을 말하고 있다 .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 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줄을 확신 하였다라고 (20-21)하였다.
그는 무엇을 믿었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이같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때에도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
창세기 15: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시기를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 방패요 너희 지극히 큰 상급 이라고 말씀 하신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고 물으니 밖에 나가 하늘을 보여 주시며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하신다. 이 별들을 셀 수 있을 진데 네 자손을 셀 수 있으리라고 하신다. 그 후로 아브라함은 소망을 두고 기다렸으니 나이 100세가 되고 그가 인간 이성으로는 도저히 그 약속이 실현 될 가망성은 대단히 희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이 조금도 약하여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아도 끝까지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믿었다는 것이다.(18)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해 할 수 없는 약속을 주신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 사실 그의 몸은 죽은 것이나 마찬 가지 이었다.
그의 아내 사래도 마찬 가지 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 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자신에게나 사라에게 분명하게 있었다.
그렇지만 아브리함은 조금도 약하여 지거나 의심치 않았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믿음이란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고 이해가 되어 믿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가능하다.
이 믿음이 곧 아브라함의 믿음이요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창세기 12:2절에서 하나님께서 큰 민족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오리라고 약속 하시고 12;7절에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실 것을 약속 하신다. 그는 이때에 외국인이요 나그네였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믿었다. 신, 구약 66권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하다. 약속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라고 하신다.
즉 사망에서, 생명을 무에서 유를 창조 하신 분이시다.
인간이 하는 일은 믿을 수 없다. 태산같이 믿었던 사람도 배신을 한다.
과학적 실험과 확실한 물적 보증이 있는 것이라고 믿을 수 있나? 최, 첨단 과학의 상징에 속하는 미국의 첼린저 호도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지 않는가?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 하고 중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 들은 부수적이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믿음이 요구된다.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나와 동행 하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의 품안에서 행복을 누리자.
대게 사람들은 있어야 할 것들이 없으면 절망한다. 먹을 양식이 없어도 합격자의 명단에 내 이름이 없어도 약속한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절망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중에 바라고 믿으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으므로 경험하였다 없는 것 같아도 절망하지 말자. 하나님은 없는 중에 있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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