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교계 원로 가운데 한 사람인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 남북나눔운동 이사장)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호소문을 통해 "하야하라"고 촉구했다.
홍 목사는 그간 정치적인 발언을 지양하고 제자훈련 등 순수 목회자의 길만을 걸어왔던 인물로, 그의 이번 하야 발언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교계 평가이다. 다음은 홍 목사의 호소문 전문이다.
박 대통령님, 하야가 최선입니다.
이 글을 올리는 저는 은퇴한 목사로서, 정치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말해본 기억조차 없는 순수한 전도자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대통령께서 물러나신 다음 야기될 몇 가지 큰 문제가 염려가 되셔서 하야하시지 못 하겠다는 생각에 감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째, 이번 일로 국가의 격이 무너지는 일이 생길 염려가 있을 수 있다 생각됩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고자 시작한 남북나눔운동의 이사장으로 대북 교류 관계를 23년 동안 해 왔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처음 북한 사람들을 접촉할 적에 가끔 체제에 대한 논쟁들을 걸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단순히 한국교회의 심부름을 하는 제게 그 시비는 늘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측의 한 분이 제게 이렇게 질문해 왔습니다.
“홍목사님, 남녘이 민주화, 민주화하는데 뭐가 민주화요?”
그때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마디 했습니다.
“국가 최고 책임자라 할지라도 잘못했으면 감옥 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지고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20여 년간 남북 교류 활동을 하면서 아무도 체제에 대한 논쟁을 저에게 해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답변은 한 터키 사람이 제 마음에 준 깊은 확신에 의해 비롯되었습니다. 업무 차 한국에 온 그 분과 제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식사장소에서 마침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감옥으로 가시는 모습이 방영되었습니다.
식사 내내 실황중계가 되자 저는 자국민으로서 너무 부끄럽고 또 창피해서 “당신네들이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6.25 때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아직 한국이 이 모양이라 부끄럽고, 그 귀한 터키인들의 피 값을 제대로 살리지 못 해서 죄송하다” 그랬더니 그분이 제게 매우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상황이 눈물나올 정도로 부럽습니다. 국가 최고 책임자가 잘못했다고 감옥 가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너무 부럽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우리나라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사실 이런 반응은 터키뿐 아니라, 이 사실을 들은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과 영국에서도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대통령님, 안심하고 하야 하셔도 됩니다. 최고 책임자가 잘못했을 적에 동일하게 법적인 제재를 받는 나라,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입니다.
둘째, 아버님께서 하신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치욕으로 바뀌고 역사 속에 묻혀버릴 수 있다는 염려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역사는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 바른 평가를 내립니다.
저는 4·19 때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곧이어 5·16이 되어서 학교는 휴교령을 맞아 최루탄과 곤봉으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박정희’ 그 이름은 제 마음속에 깊은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CCC라는 기독교학생 단체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면서 김준곤 목사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유신 때 저는 김준곤 목사님이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운 것을 보고 한번은 너무 가슴이 아픈 나머지 목사님께 대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사님, 지금 학생들이 감옥에 가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학생들을 핍박하는 대통령을 가까이하십니까? 이러다가 학생 전도 단체인 CCC의 전도길이 막힐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김 목사님은 조용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분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매우 어려울 때 먼저 나를 불러 마음속 이야기 좀 나누자고 요청을 했네. 나는 목회자로서 한 영혼을 향한 배려 때문에 찾아 가겠다고 했네.”
그때도 저는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왜 일본에서 버리는 공해산업인 폐기물을 한국으로 받아들입니까? 이것이 이 민족 장래를 향해서 바른 일 아니지 않습니까? 산업폐기물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김준곤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홍 군, 나도 그 말을 대통령께 전했네. 대통령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그 공해는 내가 다 마실 테니 우리 백성이 배만 곯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보았네.”
제가 그 말을 듣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얼어붙었던 마음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감춰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따님 되시는 대통령께서 직접 앞장서셔서 아버지 명예 회복을 위해 표면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PERIKLES)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국가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마 그분보다 더 위대한 정치가는 그리스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그분이지만 당시 유명인이라면 의례적이던 자신의 동상 하나 없었습니다. 주변인들이 왜 동상을 세우지 않느냐는 말을 계속할 때마다 그의 대답은 딱 하나였습니다.
“‘왜 이따위 사람의 동상이 세워졌는가?’라는 말을 듣기보다, ‘왜 이런 귀한 분이 동상도 없는가?’ 나는 그 후자를 택하고 싶소.”
그렇습니다. 진정한 존경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광화문에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세운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반드시 모든 업적 평가를 정확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하야하십시오.
셋째, 대국민 담화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는가?’
그 탄식소리를 들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 때 국가를 위해 진실한 마음의 선서를 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습니다. 대통령께서 지라시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모두 현실이 되었고, 비서실장께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소도 웃을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이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글을 맺으며 역사에서 실수와 잘못을 한꺼번에 해결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에 가면 렘브란트가 그린 ‘눈이 멀게 된 삼손’이라는 큰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삼손은 이스라엘의 민족영웅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여인의 유혹에 넘어져 한 순간에 큰 범죄를 행했고, 그 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엄청난 힘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결국 삼손은 원수들에게 붙잡혀가서 눈을 뽑히고 감옥에 갇혀 연자 맷돌을 짐승처럼 돌려야 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치욕의 삶을 살던 어느 날 블레셋의 축제일을 맞았습니다. 그 날도 많은 사람들이 원형경기장에 모여서 가장 무서운 원수였던 삼손을 조롱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경기장 주춧돌 위에 세워진 큰 기둥의 쇠사슬에 묶인 삼손은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밀었습니다. 그러자 그 큰 경기장은 무너졌고 왕을 비롯한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삼손이 평생 전쟁터에서 죽인 적군의 수보다 그 하루에 죽인 적군의 수가 더 많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님, 하야하십시오!
이 나라를 농단하고 당신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모든 사악한 세력들과 함께 무너지십시오. 이것이 대통령께서 짧은 시간에 실수를 회복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유라시아의 거대한 대륙의 끝자락인 이 작은 한반도가 열강들과 공산주의의 엄청난 위세 앞에서도 오늘날까지 자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첫 단추는 바로 이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독재는 물러가라.”
“아,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 살아 있군. 백성이 원하면 물러나겠다.”
국민의 마음을 하늘처럼 받들어 초연이 경무대를 떠났던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이 오늘에 다시 역사의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이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 1조를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하야는 국가를 위한 최선의 헌신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의 발전의 기초가 될 것을 믿습니다./글=홍정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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