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사회] 지난 8월 한 청소년사역단체 대표로 활동하면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대표직은 물론 목사 면직 처분을 받은 이모 전 대표에 대해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며 전한 설교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6일 오후 페이스북 기독교 커뮤니티 페이지인 '기독교다모여'에 '라OO업 스캔들, 그 이후'라는 제목과 함께 이찬수 목사의 설교 영상이 올라왔다.
이 설교 영상은 이 전 대표가 소속 노회로부터 면직 처분을 받은 이틀 뒤인 지난 8월 28일 주일예배를 통해 '변질되지 않는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던질 3가지 질문'을 주제로 이찬수 목사가 전한 설교 중 한 부분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이 설교에서 이찬수 목사는 "저는 오늘 그 목사님에게 포커스(초점)가 있는 것이 아니고, 두려움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에게 점검하기 원하는 것"이라며 이 전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찬수 목사는 "제가 참 가슴이 아픈 게요. 그 목사가 누가 그것을 까밝혀가지고 그 수치에 빠지기 한 달 전에만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회개의 자리로 나가고, 당사자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그랬더라면 이런 절망적인 수치는 피했을 거 아닙니까"라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이 목사는 "이제 그 목사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목사 '면직'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여러분, 저 아직 기회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 기회 있습니다"라며 "'주님, 내 인생에 무엇이 주님 앞에 회개할 문제인지 가르쳐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물어야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찬수 목사는 이 단체의 구호인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를 언급하며 이 구호대로 많은 청소년에게 변화가 일어나 그 학생들이 자기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품게 됐는데, 정작 그것을 외친 자기 자신은 개혁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찬수 목사는 "이게 오늘날 한국 교회... 아니요, 분당우리교회 모습은 아닙니까? 저는 이 구호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계승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이 목사는 "그런데 여러분,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제가 소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 개혁이 돼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라며 자신의 변화가 우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끝으로 이찬수 목사는 "여기 오늘 아들을 놓고, 딸을 놓고 눈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분,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아들이 딸이 자기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 일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부모인 자기가 먼저 자기를 개혁해야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며 철저한 자기 반성과 하나님과의 동행을 주문했다.
한편, 이 커뮤니티에서 일부 누리꾼들은 이찬수 목사가 이모 전 대표의 범죄에 대해 '실수'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지만, 특정 단어만 두고 이찬수 목사의 설교를 왜곡한 것이라며 대부분의 누리꾼들이 이를 곡해(曲解)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기독일보는 이같은 오해를 막고 이찬수 목사의 설교의 진전성을 알리기 위해 이찬수 목사 설교 핵심 내용을 게재한다.
날 짜: 2016-08-28
설 교 자: 이찬수 목사
제 목: 변질 없는 인생
본문말씀: 미가서 6:6~8
설 교 :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 변질되지 않는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한 3가지 질문
1. 행위: 나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가?
2. 그 행위의 동기: 나는 왜 그 일을 행하는가?
3. 동행하는 삶: 나는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설교 영상 23분부터>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모든 일어나는 현상 이면에는 누군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거든요.
왜 우리는 아름답게 행동하지 어렵나요? 왜 우리는 초심을 지키기 못합니까?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의 삶이 어떤 가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너무 많습니다.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김창대 지음ㅣIVP 펴냄)라는 책을 보면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의미는 신중하게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묻는 행위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내가 내 인생을 영위할 수 없어요. 신중하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묻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바울이다. 그렇게 악랄했던 사울(바울 이전의 이름)이 어떻게 주님의 사도가 됐는가? 바로 질문 두 가지를 잘 해서 그렇다.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행22:8)
바로 이 질문으로 바울이 원수 되었던 주님과 관계가 회복 된 것이 아닙니까?
"주여 뉘시오니까?" 우리는 물어야 되요. "예수님의 내 인생의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신 분이십니까? 이 질문을 던져야 해요.
그 다음 바울이 던졌던 두 번째 질문.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바울이 즉시 주님께 던졌던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행 22:10)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뭘까?
저 같은 목사들이 오직 첫 번째 질문, '주님은 누구시나이까?' 주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뜨거워졌으면 목사가 됐고, 오죽하면 그분이 장로가 됐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된 영문인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바울이 했던 두 번째 질문이 없다. "주여, 무엇을 하오리이까?" 이것이 없다. 자기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것 아닙니까?
초신자가 이렇게 교회를 힘들게 했습니까? 뭐 권사님들이 한국 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드셨습니까? (바로) 신학 공부한 저 같은 목사 아닌가? 왜 이 지경이 됐는가? '무엇을 하오리이까?' 질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 정말 하나님 앞에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균형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떡해 해야 한다고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해요.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놓여야 돼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 자꾸 하나님께 물어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저 나름대로는 목사노릇 잘 한다고 하는데, 주님이 보시기에도 옳으신지요? 자꾸 물어야 됩니다.
우리 엄마들, '저 나름대로는 우리 아들 잘 키운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주님이 보시기에도 이게 옳으신지요?'하고 자꾸 물어야 됩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올 여름 저를 침체로 빠뜨렸던 그 선교단체 대표, 그 목사님이요. 내가 그분을 정죄하자는 게 아니에요. 다 이해해줄 수 있다고요. 뭐 다윗도 그랬는데... 아니 인간이 그 보다 더한 짓도 하는데... 다 이해할 수 있다고요.
그러나 내가 자다가 일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뭐냐면, 아니 그렇게 실수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게(실수가) 4년씩이나 계속될 수 있냐고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그게) 뭘 의미합니까? (하나님과의) 동행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 묻는 게 없는 거예요.
저는 오늘 그 목사님에게 포커스(초점)가 있는 것이 아니고, 두려움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에게 점검하기 원하는 거예요.
제가 참 가슴이 아픈 게요. 그 목사가 누가 그것을 까밝혀가지고 그 수치에 빠지기 한 달 전에만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회개의 자리로 나가고, 당사자 찾아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그랬더라면 이런 절망적인 수치는 피했을 거 아니냐고요.
이제 그 목사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목사 '면직'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여러분 저 아직 기회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 기회 있습니다.
여러분이 청산해야 될, 사람에게 수치당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용서를 구해야 될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안 떠오르시죠? (하나님께) 물어야 돼요.
"주님, 내 인생에 무엇이 주님 앞에 회개할 문제인지 가르쳐 주시기 원합니다." 물어야 돼요!
저는... 한 몇 주 동안 그 선교단체 대표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 단체를 위해 기도하면서, 계속 마음이 그쪽으로 쏠려 가지고 그 단체에서 했던 자료도 찾아보고... 왜? 분당우리교회 중고등부들도 많이 참여하거든요. 그랬더니 '구호'가 너무 멋진 거에요.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
이야 난 이런 멋진 구호를 본 적이 없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라고 외칩니다.) 참 감사하게도요. 실제로 그 단체에서 이 구호를 외치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많은 학생들이 자기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품게 됐다는 거예요. 너무 너무 감사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가 뭐에요? 자기 목소리를 듣고 영향을 받는 많은 청소년들은 거기(목소리) 영향을 받는데 정작 그걸 외치는 자기를 개혁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이게 오늘날 한국 교회... 아니요 분당우리교회 모습은 아닙니까? 저는 이 구호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계승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 그런데 여러분, '나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제가 소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 개혁이 돼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여기 오늘 아들을 놓고, 딸을 놓고 눈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분,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아들이 딸이 자기를 개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요. 그 일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부모인 자기가 먼저 자기를 개혁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이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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