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 수많은 독자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아 온 고전, 맥스 비어봄의 명작 《행복한 위선자》가 새로운 번역과 세련된 해설을 더해 한국 독자들에게 다시 선보인다. 이 작품은 위선과 진실, 사랑과 자기변화라는 인간 내면의 깊은 주제를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낸 풍자적 걸작으로, 20세기 초 영국 문학의 진수라 불린다.
■ 사랑은 ‘성자의 얼굴’을 요구했다
주인공 조지 헬은 부유하고 권세 있는 귀족이지만, 방탕하고 차가운 인상 탓에 사람들로부터 ‘도깨비 왕’이라 불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오페레타 공연장에서 순수한 어린 무용수 제니 미어를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제니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는다. “성자와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가 아니면 사랑할 수 없어요.”
이 절망적인 거절 앞에서 조지는 기이하지만 놀라운 결단을 내린다. 자신의 외모를 바꾸기 위해 밀랍으로 성자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도깨비 왕’이 아닌, ‘성자’로서 제니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가면’은 단순한 위장이 아니라, 점차 조지의 내면과 정체성을 바꾸는 자기 초월의 여정이 된다.
■ “가장하다 보면 결국 진짜가 된다”
맥스 비어봄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메시지는 단순한 위선의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사랑의 힘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변화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그 결단 속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실제로 《행복한 위선자》는 C. S. 루이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는 자신의 대표작 《순전한 기독교》에서 “인간은 가장했던 대로 변한다”고 말하며 이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위선이 때로는 진실을 향한 발돋움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외면적인 가면은 처음에는 거짓된 모습일지라도, 반복되는 역할 수행 속에서 사람은 진짜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기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해 감수하는 고통스러운 변신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더 유효한 고전의 통찰
《행복한 위선자》는 발표된 지 12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도 깊은 통찰을 던진다. SNS 속 필터와 가면들, 타인의 시선 속에서 꾸며진 자아가 범람하는 시대에, 과연 ‘진짜 나’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조지 헬은 단지 얼굴을 감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선택한 인물이다. 가면을 쓴다는 것이 단지 외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까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결심의 표현이 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사랑은 참된 얼굴을 원한다”는 제니의 말은 시대를 초월한 진실이며, 독자는 조지의 변화 속에서 자기 성찰과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 연극과 뮤지컬로도 재탄생한 명작
맥스 비어봄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행복한 위선자》는 발표 이래 꾸준히 재조명되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고 연극과 뮤지컬로도 각색되어 무대에 올랐다. 독특한 주제와 동화 같은 설정, 위트와 아이러니로 가득한 문장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겸비하며 지금까지도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짧은 분량 속에 깊은 사유와 통찰을 담아낸 ‘소설미학’의 정수로 꼽히며, 문학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이 새로운 번역본은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역되어 독자들이 비어봄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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