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가르침, 산상수훈에서 가장 먼저 ‘복’에 관해 말씀하셨다는 것은 의외입니다. ‘가난’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토코스(πτωχός)는 ‘거지, 빈민’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적당한 슬픔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아파하는 슬픔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애통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보며 애통해야 합니다. 교회는 여전히 구원의 방주입니다. 하나님은 힘없고 보잘것없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가르치신 여덟 가지 복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팔복은 전체를 주목하고 함께 이해할 때 그 퍼즐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섬김의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김건우 – 예수께 진정한 복을 배우다

예수님은 매우 분명하게 “중생한 신자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을 얻었으므로 영원히,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선포하셨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영혼구원이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믿고, 자신이 평생 성화를 힘써야만 자신의 육체가 죽을 때 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으로 믿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이들은 “중생한 신자도 선하게 살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어떤 이들은 “진짜로 중생한 신자는 반드시 선하게 살아서 천국에 가고, 선하게 살지 않는 성도는 모두 가짜 신자라서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성경의 구원론 난해 구절들이 “중생한 신자도 행위로 영혼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화영 - 발칵 뒤집힌 기독교 구원론

디아코니아는 교회 생활에 본질적인 것이며, 교회에 공식적인 집사직이 있든 없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적 개혁주의 전통에 따르면, 예배 공동체이자 조직인 교회가 디아코니아의 역할을 나타내는 한 가지 필수적인 표현이 교회 내 집사 직분이다. 종교개혁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새로운 디아코니아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개혁주의 전통은 그리스도인의 디아코니아와 집사 직분의 리더십 사이에 연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두가 그렇게 믿는 대로)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와 같은 종이 되는 것이라면, 교회의 어떤 지체도 디아코니아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충성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성도들로 하여금 부적절하고 부당한 관행들을 바꾸게 하고, 심지어는 어떤 구조나 행동의 근거가 되는 것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집사직의 역할이다.
엘시 맥키 - 개혁주의 전통과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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