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리라”(마가복음 6:11, 고전 9:22)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올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다(막 6:11). 사도 바울도 "내가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 고백한다(고전 9:22).

이처럼 성경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강조하지만 그 방법은 강압적이어서는 안되고 상대방의 문화와 상황에 맞추어 유연성을 가지도록 가르친다. 가이사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헌법 제20조가 선언하는 종교의 자유에는 자신이 가진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러나 전도의 자유가 상대방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과 정도에 이르지 않아야 한다. 특히 기망(속임수)적 방법의 전도, 강요 및 협박에 의한 전도, 공공질서를 해치는 전도,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전도는 금지될 뿐 아니라 오히려 민형사 책임의 원인이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에서 금하는 불법적 전도의 대표적 예가, 이사야 11장 2절의 말씀에서 임의로 따온 신천지의 ‘모략전도’이다. 신천지 신도임을 숨기고 기존 교회 교인이나 대학 동아리 회원, 일반적인 성경공부 모임의 일원인 것처럼 행세하며 거리에서 종교 관련 설문조사를 하거나, ‘성경공부’, ‘심리 치유’, ‘취업 컨설팅’ 등을 내세워 접근한 후 신천지 교리로 유도한다. 기존 교회에 신천지 신도들을 잠입시키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소위 '산 옮기기' 전략, 대학생이나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포교 전략, 문화·심리·취업 등의 주제로 접근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일단 포섭이 되면 신천지임을 밝히는데 그때는 이미 발을 깊숙이 담근 터라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2018년 가정이 파탄 나고 일상생활이 무너진 뒤에야 가까스로 신천지를 나온 교인 3명이 신천지 서산교회를 상대로 그동안 당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신천지에 뺴앗긴 청춘을 돌려달라는 이른바 '청춘 반환 소송'이다. 1심과 2심법원은 신천지의 전도행위에 위법성이 있음을 인정해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선교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을 잃고 상대방의 종교선택 자유를 상실시키는 정도에 이르는 경우에는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이 성립될 수 있으나, 원고들이 신천지예수교 소속이고 그 교리를 배운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추가적인 교리 교육을 받고 입교하여 신도로서 활동하는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신천지의 선교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을 잃거나 원고들의 종교선택의 자유를 상실시키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만 신천지의 모략전도 즉, 고민 상담 등을 내세워 접근한 후 친분관계를 형성·유지하거나 신천지가 아닌 다른 교단 소속의 신도나 목사인 것처럼 가장하여 접근한 것은 사회적·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라는 단서는 달았다.

“잘못은 있지만 배상 책임은 없다”는 이 판결의 논리는 가스라이팅을 당한 교인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물은 격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전피연)은 “종교사기로 인한 국민들의 울부짖음에 아직도 부응하지 못한 사법부의 판단에 안타까움과 절망을 느낀다”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사기포교를 예방, 근절하기 위해 사기포교 처벌 특별법을 제정을 위한 전국민 캠페인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천지의 불법적인 모략전도와는 그 차원이 다르지만, 일반인들이 보면 섬찍한 느낌을 주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방식의 전도나 상대방이 거부하는 데도 집요하게 따라붙는 찐드기식 전도는 복음 전파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하라”는 사도 베드로의 권고(벧전 3:15)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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