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배움의 과정을 언젠가 본 것 같은데 한번 다시 정리해본다.

우선, 어른들의 배움이라는 것이다(adult learning). 어린이들의 배움과 어른들의 배움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어린이 교육은 패다고지(pedagogy)라고 하는데 비해, 어른들의 교육은 안드레고지(andragogy)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 두꺼운 매뉴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때라야 그런 매뉴얼을 본다는 것이다.

들째로는 고급 교육이 있다는 것이다(advanced learning). 세계에서 유명한 학교들을 보면 고급반에서는 거의 다 ‘이슈’에 대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하버드의 경우 학생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읽고 와서 교수 앞에서 발표하는 식인데 비해, 옥스퍼드와 켐브리지는 학생이 교수 역할을 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클래스를 이끌고 간다는 것이다. 교수는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이 되도록 분위기를 유도해간다는 것이다.

세 번째 포스터모더니즘 시대이다. 이 시대에 모든 해답은 흑백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좋다 안좋다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든 결정이 단순치 않다는 얘기이겠다. 많은 정보가 주어지며 강의보다는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시대였다.

네 번째는 고대 통찰력인데,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서 사상과 교육을 이끌고 간 사람은 플라톤 이었다. 그는 우리가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책도 쓰지 않았기에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믿기를 최상의 지도자는 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즉 철학자(philo-sophers)라고 믿었다. 플라톤은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 속 깊은 곳에 있는 지혜를 빼내기 원했으며, 그것이 진리로 인도하기 바랐다.

다섯 번째는 신학적인 방법인데, 현대에 있어 신학이란 진리를 외우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소위 ‘질문에 답하는 식’이었다. 모든 해답은 신조나 고백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오늘날에 있어 신학은 동사(verb)가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진리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신학은 활동으로 서술된다. 우리는 신학을 하는(do) 것이다. 신학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이슈에 대해 성서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고대 진리는 이제 각 세대에서 신선한 표현과 국제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성서적 패턴이라는 것으로 모세가 이스라엘 부모들에게 가르쳤을 때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신명기 6장)에 대해 교훈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교도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을 계승해주었다.

위의 내용들을 좀더 얘기해보면 문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독학), 여럿이 모여 어떤 주제를 갖고 토론하면서 배우게 되고(그룹), 많은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하고(정보 공유), 지혜를 추구하게 된다(나의 일반적 관점).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교육 패턴이라 볼수 있고, 마지막의 두 가지는 신학과 행함이라는 주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는 위의 두 가지(일반적인 교훈과 신앙적인 진리)를 균형있게 습득하여 삶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는 전반적인 삶에 대해 어떻게 성서적으로 생각하고 따라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하겠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다음 세대 지도자들을 잘 도와서 건전하고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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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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