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군중 선동의 죄로 로마법에 고발됨
예수의 대답이 신성모독(blasphemy)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그런 죄목으로 로마 법정에 고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총독 빌라도에게는 유대법에 따른 신성모독이란 종교적인 것이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예수를 고소할 수 있는 길은 예수가 유대 땅에서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위협을 가한다는 죄목을 씌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로마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로마의 식민지 통치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인물로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수의 발언은 로마로부터 독립된 왕권을 요구하는 발언이라고 고소하는 것이다. 즉 군중 선동죄로 고발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 신약학자 타이센(Gerd Theissen)이 해석했던 것처럼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예수의 메시아적 설교와 사역은 유대 지도층과 로마 지배자에게는 유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상징정치적 행위(symbolpolitical action)로서 해석되었던 것이다. 정치적 선동에 대한 고소에 대하여는 총독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리인으로서 책임있게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사(四)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심문과정을 모두 일치하여 기록하고 있다(마 27:11-26; 막 15:1-15; 눅 23:1-5; 요 18:28-40).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마 27:1) 다음 날 새벽에 예수를 결박하고 끌고 가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다. 예수가 고소당한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 27:11). 이에 예수는 대답하신다: “네 말이 옳도다”(마 27:11). 예수는 단지 선지자라는 이유로 처형된 것이 아니다. 이는 로마 총독에게는 사형에 처할 죄목이 되지 못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고발하되 예수는 이에 대하여 전혀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는다. 진리의 빛이 비추이되 어두움에 장악되어 전혀 깨닫지 못하니 세속적 종교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된 저들에게 예수는 대답할 하등의 가치를 느끼지 아니하신 것이다. 빌라도는 이를 기이히 여긴다(마 27:14).
요한복음 저자 요한은 예수와 빌라도 사이의 대화를 보다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요 18:33-38):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b; 요 18:37a)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는 시인하신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b).
빌라도는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이 전승의 역사적 신빙성에 관하여 신약학자 찰스 다드(Charles H. Dodd), 레미먼드 브라운(Raymond E. Brown) 등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유대인의 명절에는 총독이 군중들의 소원을 따라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습에 따라서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려고 한다. 복음서 저자들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하다고 생각했다. 빌라도는 로마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방랑 설교가요 랍비인 예수가 무력으로 로마 군대를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예수는 로마에 반역을 일으키기 위해서 군중들을 동원하지도 아니했고(요 6:15) 열심당원들과 연대하는 조직적인 저항을 획책하지도 않았다(마 26:52-53; 요 18:36). 그러므로 빌라도에게 예수는 전혀 로마에 대해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마태는 빌라도 아내의 꿈 이야기까지 기록하고 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마 27:19). 빌라도는 예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는 것을 주저한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이방인인 유대 총독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예수를 놓아주기를 애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 23:13-16).
그러나 군중들의 성화(成火)는 거세진다. 마태는 다음같이 기록한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이에 백성들은 예수의 무죄한 피의 대가를 자신과 자손들이 짊어진다고 대답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하다고 생각하지만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민중들의 의견에 따른다. 그는 자기의 의도에 반하여 내리는 사형언도에 대하여 자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대야에서 자기의 손을 씻는다.
빌라도의 이러한 행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현재적인 정치적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면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대해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반체제적인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외면적으로는 로마체제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빌라도가 선언해주는 것이다.
단지 빌라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가 유대 지방을 어지럽힐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고는 본 것이다. 당시 유대지역은 종교적인 열정과 수차례 있어왔던 반란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이에 거부반응을 보일 때 대량살육이 벌어질 정황이 명백해지자 뒤로 물러섰다.(Flavius Josephus, Jewish Antiquities. Thackeray, H. St J. (Translator), Harvard University Press 1930. 18:55-90)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하고 백성을 선동함으로써 자기가 다스리는 유대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자라는 고소에 대하여 빌라도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석방하고자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그 지역의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로마 황제의 통치권을 방어하기 위하여 대중의 흥분과 열광주의의 요구에 따라서 그의 뜻을 굽힐 수 밖에 없었다.
빌라도는 스스로 왕이라고 주장하면서 로마로부터 독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열심당의 망령을 일깨우는 인물로 간주되는 예수에 대하여 군중들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것이 총독으로서의 자신의 통치권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유다 지역에서 최초로 로마의 상징물을 담은 동전(銅錢)을 주조하고 종교적 반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까지 로마의 권위를 확충하기 위하여 행동한 것도 자기의 총독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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