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고린도전서 13:4)

본문에서말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온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신 사건을 생각하여 어려움을 참게 된다. 그뿐 아니라 사랑은 소망을 내포(內包)하기 때문에 참는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있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망(贖罪的 死亡)은 그의 재림을 성립시켰다. 야고보서 5:7-8에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보라 심판자가 문밖에서 계시니라”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칼보다 강한 작품 중의 하나가 스토 부인(Harriet E. B. Stowe, 1811-96)의 <톰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1852)이다. 세계 역사를 변화시킨 책 ㅡ 바탕에 흐르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사상을 밑바탕으로 해서 미국 남북전쟁은 일어났고, 그 결과 흑인 해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인공인 흑인 톰 아저씨. 그는 선량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모든 노예들이 그러했듯이 톰도 주인이 바뀌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강제로 헤어져 여기저기 끌려 다닌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항상 톰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모든 일을 전부 하늘에 계신 신 앞에 맡긴다” 하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톰에게 가해지는 박해는 말할 수 없이 가혹하였다. 매일 피를 짜 내는 것 같은 고된 노동이 부과되었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는 기색이라도 있으면 사정없는 채찍질을 당하여야 하였다.

그와 같은 상황 아래서도 톰은 함께 일하는 흑인 여자 노예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여 매질을 당하게 되기라도 하면, 남몰래 자기가 딴 목화를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 일이 발각되어 톰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을 당하여야 하였다. 절망한 나머지 톰은 자기가 믿는 신까지도 자기를 버렸는가 하고 믿음이 흔들렸다.

절망에 빠진 톰은 어느 날 밤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톰에게 깨달음이 왔다. 그는 예수를 본받아 어떤 고난과 고통도 참고 견디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여자 노예인 불쌍한 에메린이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해서, 톰은 악독하기 짝없는 주인 레글리에게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게 되었다.

백인 주인 레글리의 명령에 따라 톰을 채찍질한 것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흑인 노예 샘과 샘보였다.

샘과 샘보에게 호되게 맞은 톰은 그 두 흑인에게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 그리스도 예수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에 관하여 말하고 숨졌다.

두 흑인은 울며 말하였다. “왜 우리는 예전에 이런 말을 듣지 못했을까? 그러나 예수여, 당신을 믿사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ㅡ남북전쟁이 끝난 후 스토 부인은 링컨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다. 링컨은 “부인, 그 작음 몸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겼습니까?” 하고 물었다. “신이 주신 힘으로 썼습니다.”

스토 부인도 링컨에게 어떻게 그와 같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링컨도 “신이 하신 일입니다” 하였다. 스토 부인이 링컨에게 선물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첫 장에 다음 글귀가 씌어 있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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