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과 무의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해 온 다일공동체가 서울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사랑의 밥퍼’를 중단 없이 할 수 있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가 동대문구청이 다일공동체에 부과한 2억8천여 만원의 이행 강제금과 밥퍼 건물 철거 명령을 모두 취소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다일공동체의 손을 들어준 건 ‘밥퍼’가 존치될 만한 공익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게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다일공동체가 20년 이상 해당 사건 토지와 건물에서 무료급식사업을 수행해 왔고, 하루 1,000여 명이 기존 및 신규 시설에서 무료급식을 받고 있는 점을 공익성 실현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다일공동체와 동대문구청 간의 법적 공방은 지난 2022년 동대문구청이 다일공동체가 운영하는 관내 ‘밥퍼’ 건물이 불법 증축됐다며 철거명령과 함께 2억8천여 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다일공동체가 이 건물을 신축하겠다고 건축 허가를 받은 후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증축한 걸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일공동체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증축한 건물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서울시와 동대문구청과 협의한 방식대로 건축 허가를 받아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36년 전 서울시에서 지어준 기존 ‘밥퍼’ 건물이 무허가 미등기 건물이어서 기부 채납을 통한 합법화 과정에서 건축 신청을 하고 추후 서울시 사업으로 재건축을 진행하기로 협의한 건데, 구청장이 바뀌면서 이런 협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불법’ 프레임을 씌웠다는 주장이다.
다일공동체와 관할 동대문구청이 건축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된 건 ‘밥퍼’ 건물 주변에서 사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민원이 계기가 됐다. 이 주변이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녀들 통학로에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이들을 불편하게 여긴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일공동체가 이 주변에서 ‘밥퍼’를 시작한 건 35년 전이다. 이때 만해도 이 지역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청량리 역 뒤편의 사창가 등 낙후 시설이 철거되고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민 사이에 마찰이 시작됐다.
다일공동체를 이끌어 온 최일도 목사는 이 지역이 개발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밥퍼’를 시작해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걸 목회적 사명으로 여겨왔다. 그런 사람을 구청이 엄청난 불법을 저지른 사람으로 몰아 지역에서 내쫒으려 한 게 법정 소송으로 번지게 된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동대문구청 측의 문제 해결 방법이 꼭 ‘밥퍼’를 철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까. 아쉬운 건 구청 측이 이 지역에 새로 입주한 아파트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가라앉히기 위한 다른 노력은 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며 강제 철거명령을 내리는 등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점이다. 아무리 주민 민원이 폭주해도 사회 공익적인 부분을 참작했다면 소송까지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게 된 건 자녀들이 통학로에서 만난 부랑자로부터 어떤 불상사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밥퍼’ 측은 무료급식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쪽방촌에 기거하는 무의탁 독거노인이라는 설명이다. 남루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 시작된 오해가 지역 갈등으로 번지기까지 관할 구청이 소극적 대응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구청의 처리방식에 의문이 드는 건 ‘밥퍼’ 건물 증축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그리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초 ‘밥퍼’는 2010년 서울시에서 지어 준 건물을 사용하기 시작해 2021년 유덕열 전 구청장의 요청으로 건물을 증축했다. 사용하는 토지와 건축물의 소유주가 모두 서울시라는 말인데 왜 구청이 다일공동체에 불법의 책임을 물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게 다가 아니다. 지역 갈등이 표출하자 지금의 구청장이 지방선거유세 과정에서 “밥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구청장에 당선돼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밥퍼’ 철거 명령과 그에 대한 이행금 부과 처분을 내린 것이다. 전임 구청장과 서울시 간에 협의된 사항을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이런 행정명령은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선거에 출마한 구청장 후보가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은 얼마든지 내걸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 더 세밀히 살폈다면 주무관청이 시작한 일에 애꿎은 사회공익법인이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턱대고 공약 이행을 하려는 의지에 무리수가 따른 것이다.
2년여에 걸친 갈등과 법적 소송으로 다일공동체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 건축물에서 기생해온 단체인양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퍼’ 재단이 입은 타격은 이곳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받으며 살아온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이 졸지에 당한 피해에 비하면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닐 수 있다.
‘밥퍼’가 지역 혐오 시설로 낙인찍히면서 무의탁 노인들에게 모든 피해가 돌아갈 수 있었는데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럽다. 법원이 바른 판단을 해줬기에 망정이지 만약 ‘밥퍼’가 패소했다면 무료급식소를 찾아야 하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과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봐 온 모든 이들에게 깊은 상처가 됐을 것이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나 사각지대는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적 음지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건강한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유독 차갑게 식은 이웃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사랑의 선행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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