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시월이 기다려진다. 가을을 기다리는 낭만적인 남자의 감성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의 시네마 천국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기에.
제29회를 맞이하는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24.10.2-11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을 비롯한 주변 극장가에서 펼쳐졌다. 올해상영작은 총 240여 편으로 영화 마니아의 시선을 끌었다. 10.7-9일까지 영화 9편을 사전 예약하고 부산으로 향했다.
먼저 인상적인 이탈리아 영화 "베르밀리오"를 감상했다. 1944년 2차대전 말경 이탈리아 북부 높은 지대, 베르밀리오 산골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토리이다. 마을 학교 교사의 부부와 11명 자녀들 대가족이 겪는 사연이다. 조용한 마을에 군대를 피해 도망쳐 온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전쟁 통에도 여전히 전통적 가족관계, 부권의 강요, 종교, 자녀교육과 성장통, 결혼, 출산, 이별, 죽음 등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또 한 편의 이탈리아 영화 "글로리아"를 감상했다.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한 여성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영화에 사용할 곡들을 미리 작곡한 후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매우 자전적인 내용을 기반에 깔고 18세기 당시 보육원에 맡겨진 고아들 중에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묻혔는지 밝히려는 시도였다.
시골 성당의 기악을 담당하는 5명의 여성 중심의 스토리이다. 반전으로 자신들이 몰래 준비한 음악을 교황이 그곳을 방문한 자리에서 파격적으로 자작곡을 발표한다. 전통과 억압에 반기를 든 여성해방 영화였다. 배경에 흐르는 곡들과 매우 강렬한 엔딩곡은 서민들이 환호하는 새 장르로, 기존 종교음악에 반기를 든 음악적 혁명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독일 영화 “다잉(죽음)”이었다. 이 영화는 현대 독일 사회의 가족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었다. 주인공은 관현악단 지휘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요양원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어머니도 암과 투병하다가 운명한다. 관현악단 작곡자인 친구는 자살을 하면서 도움을 청한다. 이 죽음을 중심으로 지휘자가 겪는 내면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전 아내가 출산을 하자 8분의 1 지분의 아빠 역할을 힘겹게 한다. 여동생은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고의적인 탈선을 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앞둔 부모와 자녀 관계, ‘죽음’이라는 주제로 작곡을 하다가 죽음을 선택하는 친구, 엇갈린 전 아내 부부와 함께하는 육아, 새 생명에 대한 애착 등을 통해 질문한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한 수작으로 우리에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다.
내가 선택한 영화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이전 보다 많은 영화가 생명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가임 여성, 갓난 아기, 유아와 유년기 아이들이 희망의 은유로 많이 등장했다. 또한 현대의 새 가족형태에 대한 조명과 그 구심점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여성이 찾는 자유, 가부장적 전통에 대한 도전, 가정과 예술의 간극, 신화에서 찾아낸 미래 세계 상상력 등이 화제였다.
필자에게 BIFF는 시네마 천국으로 가는 여정이다. 세계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공간이다. 해마다 새로운 상영작으로 만나는 인간의 삶,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 고통을 넘어 행복과 구원을 추구하는 세계인의 조용한 함성을 보고 듣는 감동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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