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본 도서의 저자인 구교형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경기도 광명에 교회를 개척하며 빠듯한 살림에 보템이 되고자, 교인들의 일상과 더 가까워지고자 택배 일을 시작했다. 목회에는 베테랑이었지만 택배 기사로서는 왕초보였던 저자는 미로 같은 가리봉동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목사일 때는 미처 몰랐던 교회 밖 세상 치열한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꼈다.
저자는 택배 일을 통해 그간 알지 못했던 ‘진짜 세상’을 경험하며 종교와 종교인의 자리에 대해, 이웃에 대해, 땀 흘리는 노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구교형 목사가 1톤 트럭 가득 택배 상자를 싣고 가리봉동을 누비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택배 일을 통해 깨달은 삶의 가치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장마철에는 비에 젖어서 흐물흐물해진 박스가 오기도 하고, 아이스박스가 깨져 국물이 흐르거나 아예 내용물이 덜렁덜렁해져서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국물이나 이물질이 택배 기사에게도 묻어 그날은 냄새와 함께 배달해야 한다. 그때부터 우리는 봉합수술에 들어간다. 일단 상태를 보고 수술로도 살아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사진으로 증거를 남겨 파손처리를 하여 발송지로 되돌려 보내거나 폐기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수술을 거쳐 살려낸다. 단지 포장재만 파손된 경우는 내용물만 잘 넣어 테이핑하면 되지만, 내용물까지 손상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걸 잘 파악하고, 어떻게 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좀 우스운 얘기지만 택배 일을 하는 데 키가 작아 좋을 때가 있다. 특히 좁은 골목, 오래된 주택가가 많은 구로동, 가리봉동에서는 더욱 유리하다. 낮은 대문, 좁은 계단과 높은 난간을 올라 배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물건을 양 겨드랑이 사이나 가슴 가득 움켜쥐고 오르내린다. 나도 이렇게 겨우겨우 오르내리는데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기사들은 어떻게 다닐까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한다. 무게중심이 낮아 흔들림이 크지 않고, 좁은 곳을 지날 때도 무난한 나는 주택가 택배에 최적화된 몸이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까? 앞에서 말했듯 힘든 육체 노동은 생각과 마음을 단순하게 비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편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둔 분노와 부정적 에너지는 어딘가 쏟아놓지 않으면 몸도, 영혼도 더 크게 병들게 된다. 그렇다고 함부로 표출할 수도 없다. 그럴 때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저주 기도를 하는 거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혼자서’ 욕설이라도 쏟아내면서 당장 불타는 분노와 절망을 이겨내는 거다. 그런 면에서 택배 기사들의 욕설은 반드시 특정인(갑질, 진상 고객)을 향한 것이 아닐 때가 더 많다. 답답한 자신의 모습을 털어버리고, 당장 힘든 상황을 욕하면서 견뎌내는 것이다. 배설 욕구와 비슷한 것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나름 인생을 열심히 살았지만, 나이 50이 넘어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인생의 막장을 만났다. 살길도 없었고, 살 의욕도 없었다. 목사인데도 기도나 성경 읽기도 힘들었다. 그때 친구였던 지금의 택배 대리점 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이것저것 생각하며 상념에 빠지면 더 헤어나기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돈도 벌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택배 해라. 정신없이 일하며 몸을 쓰다 보면 힘들어서 잡념도 없어지고 마음도 회복될 거다.’ 그렇게 택배를 권했다.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2015년에 목회를 하며 택배 일을 호되게 경험해본 터라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치 제대했던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심정 같았다. 그러나 하늘의 소리로 듣고 바로 다음 날 점장에게 전화해 정식 기사로 일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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