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디든 현대인의 삶은 고단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지키고 버텨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다만 이 위기의 시간 속에서 자칫 ‘생각의 주체’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채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되는 참혹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 강영안 교수(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는 질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권하고, 그 출발 지점에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라고 친절하게 묻고 있다.
저자가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고 싶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만나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생각하지 않기는커녕 생각이 너무 많아 도리어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형국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각들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회개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생활을 떠나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말 자체를 보면 ‘회개한다’는 말은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문제는 생각이고, 사고방식이고, 그에 따른 삶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 나타난 행동이 바뀌는 것만으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생각, 가치관, 신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바깥 행위만 바뀌기 때문에 실제 삶에는 복음의 능력, 복음의 열매가 드러나지 않는다.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려면 교회에 들어올 때 머리는 문밖에 떼어 놓고 가슴만 가지고 들어올 것이 아니라 가슴과 함께 머리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서로 돌보고, 서로 관심 갖고, 서로 세워 가도록 애써야 한다. 비록 현재 만족할 수 없는 삶의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부르신 그 소망에 기대하고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하고 모색하고 숙고해야 한다. 공부하는 자세를 한순간도 흩뜨려 놓을 수가 없다. 토론을 위한 토론,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영적으로 서로 세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앙은 우리의 전인격적 행위다. 신앙은 단순한 지성의 활동만도, 감정의 활동만도, 또는 의지의 활동만도 아닌, 온 인격이 투여된 전인적인 활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만을 내세우는 지성주의만, 또는 가슴의 체험과 느낌과 감정만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만, 의지의 결단을 내세우는 실천주의만 받아들일 수 없다. 지성과 신비와 실천, 이 셋 다 신앙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어느 하나 없이, 어느 하나를 배제하고서 온전한 신앙을 말할 수 없다. 온전한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탁하고자 그분만을 궁극적으로 신뢰하려고 하는 의지, 좋아하는 감정, 그분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생각하고 아는 지식을 모두 한결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바울은 한마음을 품어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돌아보되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마음’은 생각을 말한다. 바울은 같은 생각을 품으라고 한다. 이어지는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에서 ‘마음’도 생각을 두고 한 말이다. 예수의 생각, 예수의 사고, 예수의 삶의 근본 태도가 우리에게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근본 태도, 사고방식은 겸손인데, 예수님의 겸손은 다시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시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내어 주신 것으로 실천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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