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는 개인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경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경험할 곳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가 인터넷 세상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마음만 먹으면 다른 교회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역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권위적인 설교로만 승부를 거시겠습니까? 나이로 평가하지 않고, 청년을 신앙 공동체의 주체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다람쥐가 원하는 공동체는 무엇인지 묻고,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나 법인이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이 없기에 누구도 남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교회의 주인은 모두입니다. 누구도 누구의 종이 아니라 교회 안에선 모두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니체의 철학과 다른 지점입니다. 주인의식 없는 다람쥐들에게 억지로 주인의식을 주입하려고 애쓰지 말고,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세워 주면 어떨까요? 중심을 잃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맹이 없는 시대정신이 아닌,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소개합시다.
구선우 – 다음세대입니다
20세기 이후 신학계는 세계에 내재하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재조명하고 회복함으로써 초월적 신론으로부터 만유재신론(pane- ntheism)으로 전회하는 사례들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기에는 자연과학의 발전과 생태계 파괴라는 주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존재론상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만물 안에 거하는 하나님을 재발견하면서 루아흐 성령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내재성을 회복하는 시도가 가능해졌고,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세계를 하나님과 더불어 전일적으로 보게 할만한 고무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 특히 지혜와 목적과 사랑을 결핍한 신론을 개진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밝히는 신학이 될 수 없다. 그렇게 해명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만나온 하나님이 아니다. 파괴적인 무신론 및 유물론에 직면했던 근현대 신학이 하나님의 인격성, 하나님의 사랑을 발설하는 데 머뭇거리고 웅얼거렸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태도다.
박혁순 – 하나님의 무, 그 천의 얼굴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영원 자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 전에 창세 전에 약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 건의 사항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까? 욥이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다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 너 어디에 있었느냐고 하시는 질문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질문에 욥은 자기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고 입을 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십니다. 창조도 율법도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장우 – 언역에 따른 설교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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