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부성의 중요성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사회의 수많은 문제는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고도 진단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60년 동안 아버지 없는 아이들(비혼 출산 여성)이 8배 증가하였으며 이는 세계적 추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 사는 아이들은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4배 높으며, 청소년기의 낮은 자존감과 성 관련 활동이 더 많았다고 보고되었다. 임신한 십대들의 71%, 자살하는 십대들의 63%는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아버지의 날 메시지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치러야 하는 대가, 즉 당신을 인도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자 어른이 집에 없을 때 가슴에 뚫린 구멍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적으로 압니다. 책임은 임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버지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부성은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남성 당사자와 사회에도 유익하다. 문제 행동 경향이 높은 남성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범죄와 약물 남용(담배, 술, 마리화나 등)이 감소하며, 생물학적 자녀를 출산하게 되면(즉, 아버지가 되면) 이 지표들은 더욱더 감소하게 된다<그림 1>.
과거와 달리 현대에 들어와서는 남성과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기혼 유자녀 맞벌이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은 가사와 육아를 적절히 분배하는 이상적 아버지 상과 실제적 역할 수행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가정 안에서 갈등과 소외를 경험하고 있었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인 것에 비해 부성에 대해서는 매스컴 등에서 비춰지듯 감성적이고 친근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막상 육아휴직이나 육아를 위한 잦은 칼퇴근 등을 감행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직장 내 불이익이 크며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로 부성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도 여전히 남아있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인들에게 아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늘어가고 있다. “노키즈존(no kids zone)”에 대한 한국사회의 찬성여론이 높다. 물론 아이의 특수성(안전사고 위험 등)과 영업의 자유 문제 등 논란이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존중과 배려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급식충”, “잼민이”, “요린이” 등 아동에 대한 비하 표현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개개의 가정 내에서는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평가 절하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다. 가정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따른 ‘비혼주의’ 확산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을, 가부장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다루는 주장들도 자주 관찰된다. 아빠, 엄마,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표준적인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고 일컬으며 비판하는 논리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남성은 외부 세계와 직업, 여성은 가정과 가사노동을 맡아 왔고 이러한 분업은 남성과 여성의 위계질서와 의존성을 심화시켰으며 이러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정폭력이나 다른 형태의 가정에 대한 혐오 또는 죄책감을 유발시킨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본적인 사회집단으로서 산업화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고, 남성-외부 세계, 여성-가정이라는 이분법은 산업화, 남존여비 사상 등 구시대의 산물일지는 몰라도 가정 자체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었으며, 가정은 유사 이래 안정적으로 작동해 온 사회의 기본구조로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물론 가족을 위해 개인의 삶을 억압하거나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식의 지나친 가족주의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족 문화에 대해서는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로 잡아야지, 문제를 반대로 뒤집어 가정 자체의 존재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폐기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비생산적인 극단으로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는 비혼주의 또한 저출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3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4%, 남성은 13%밖에 되지 않았다. 즉 결혼과 출산을 과거와 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비혼의 원인으로는 결혼 비용 부담, 결혼할 기회 상실, 결혼으로 인해 발생할 불이익 부담, 자발적 결혼 의사 결여 등을 들 수 있다. 남성 비혼자들에게 가장 많은 유형은 결혼비용부담형, 그다음으로 기회상실형이었으며 여성 비혼자들에게 가장 많은 유형은 기회상실형, 이어서 자발형이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경제력을 갖춘 남성 청년층은 감소하여 여성들이 자신의 수준 이상의 배우자를 만나려 하다 보니 이것이 여성들의 결혼 기회를 낮추게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기존의 가부장적 태도는 아직도 관찰되며 개선이 필요하지만, 요즘은 반대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 대립적 구도가 형성되어 있고 한국 저출산은 젠더 갈등 ― 즉, 남녀 사이의 관계 악화 ―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저출산에 대한 대책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기에 보다 세심한 고려와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비자발적인 비혼 상태나 독거노인, 힘든 여건에도 육아를 하고 있는 한부모가족, 입양 가정 등은 인정을 넘어서 적극적인 도움과 돌봄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발적이고 인위적인 비혼출산을 늘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프랑스와 같이 동거를 합법화하여 혼외 출산율을 늘려야 하며(프랑스의 혼외 출산율 62.2%) 한국의 혼외 출산율이 2.9%로 낮은 것이 문제인 것처럼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혼출산을 장려한다고 해서 출산이 과연 늘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정작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은 통계분석 결과, 출산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PACS를 맺은 커플의 46%가 자녀가 없었지만, 혼인 관계인 부부는 15%만 자녀가 없었다. 즉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출산을 덜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결혼에 비해 약한 결속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려는 결단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출산 해법으로 비혼 여성에게 정자 이식 등의 시술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비혼 여성이 시술까지 해서 남편 없이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우가 빈번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비혼출산을 장려하는 것이 가정에 대한 가치관을 붕괴시켜 오히려 결혼, 출산의 가장 안정적인 틀인 가정이 더 가파르게 소멸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객관적 자료들은 전통적 가정이 더 많은 이점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동거는 관계의 불안정성을 야기하여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동거 중인 비혼 부모는 결혼한 부모보다 10년 동안 관계를 종료할 가능성이 거의 3배 더 높았으며 이러한 파트너십의 불안정성은 아동 복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가족 전환(부모의 헤어짐과 파트너 교체 등)이 거듭될수록 자녀의 공격성과 행동 문제가 증가했다. 동거 중인 부모의 아이들은 행복감이 낮았으며, 생물학적 부모가 결혼하여 이룬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신체적,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각각 4배, 5배 증가하였다. 아이의 생물학적 부모 중 한 명과 생물학적 부모가 아닌 다른 한명이 동거하는 경우에 아동학대는 10배 이상으로 급증한다<그림 2>.
또한 정자 및 난자 기증으로 태어난 481명에 대한 2020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7%는 “기증자가 나의 정체성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진술에 동의하였으며 71%에서 “정자, 난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때때로 우울하고 화가 나거나 슬프다”고 답하였다. 96%에서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위해 기증자의 가족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94%에서 “기증자에 대해 알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답하였다. 81%에서 “익명의 기증은 폐지해야 한다”고 답하였다. 생식세포 기증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대규모 전향적 연구는 아직 시행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증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본능적으로 부모를 알고 싶어 하는 사례들은 쌓여가고 있다. 독일의 기본법에서 “모든 자녀는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알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는 일반적인 인격권으로부터 파생된다”라고 판단한 바 있듯이, 첨단 재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파생된 인권 문제도 또한 활발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라. 무책임한 성문화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
지난 50년 동안 급속하게 진행된 성혁명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정상으로 인식되게 하였으며, 성매개감염병 및 더 많은 원치 않는 임신, 그로 인한 낙태와 미혼모를 낳았다. 이로 인해 남성들도 결혼을 통해 가족과 여성과 아이들에게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동거가 성 욕구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가 되고 있다. 동거는 결혼과 비교할 때 더 낮은 헌신, 더 높은 비율의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학대와 관련이 있고 삶에 대한 불만족과 더 높은 우울증 비율과 연관되어 있다. 동거는 평균적으로 2년 미만으로 지속된다고 보고되어 결국 ‘동거는 독거로 이어진다(Living together leads to living alone)’고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동거 커플은 결혼한 부부에 비해 계획적인 임신을 덜 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 자유로운 성생활, 동거를 선택하는 사고방식은 자기 절제(self-control)보다는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을 촉진하며, 헌신이나 희생과 같은 가치들은 약화시킨다. 자기 절제와 헌신과 희생은 성공적인 결혼생활에 필수가 되는 요소로서 자유로운 성생활과 동거를 긍정적으로만 조명하는 것은 결혼 인구와 출생 인구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점차 늘어나는 난임 문제도 출산율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 저출산 문제와 관련하여 난임을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난임의 원인은 만혼, 환경오염, 생활 방식 등 다양하다. 그러나 자유로운 성생활의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성매개감염병과 낙태도 난임의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피임약은 임신을 예방하는 약이지 성매개감염병을 예방하는 약이 아니며 콘돔도 완벽한 성매개감염병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성매개감염병의 보고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재 일본 등 주변 국가에 매독이 급증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증가 추세로 2024년부터 매독이 전수감시 대상 3급 감염병으로 격상되었다. 매독은 2011년 대비 2019년 신고가 1.8배 증가하였고, 임질, 클라미디아 등 5종의 표본감시 감염병 신고는 3.8배 증가하였다. 이러한 성매개감염병은 가임기인 20~30대에 가장 높은 유병률을 보였으며, 효과적으로 치료되지 않거나 합병증(부고환염, 골반염 등)이 생길 경우 남녀 모두에게 난임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는 성매개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성행위를 피하거나 일부일처제에서의 안정적인 성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편 피임 실패로 많은 낙태가 이루어져 왔는데 낙태 시술로 인한 부작용으로 감염, 유착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이 또한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낙태는 난임 이외에도 여성들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1년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에 보고된 800,000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은 출산을 한 여성에 비해 155% 높은 자살률, 34% 높은 불안, 37% 높은 우울감을 보고하였다. 또한 2018년까지 발표된 103개의 연구를 리뷰 하였을 때에도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은 낙태를 경험하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더 높은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는 결론이 도출 되었고, 특별히 취약한 여성에 대한 선별과 상담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계속)
김수정(내과 전문의, 성누가병원 내과 원장)
*출처: 생명, 윤리와 정책 제8권 제1호. 1-34 ©(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2024년 4월.
투고일 2024년 2월 24일, 심사일 2024년 4월 9일, 게재확정일 2024년 4월 16일 http://doi.org/10.23183/konibp.2024.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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