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사람이 힘들다고 울면 안 되지. 힘들어도 웃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울 자격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울음을 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우는 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울라고 권합니다. 우는 것이 믿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습니다. 운다는 것은 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견디겠다는 뜻입니다. 버티겠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포기했다는 사인이 아니라 나를 더 강하게 하겠다는 사인입니다. 삶에 힘든 고난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고난 없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제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보여도 제 삶은 끝나지 않았고 광야 한복판에 버려진 것처럼 보여도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헤매는 이 시간이 낭비되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더 정결해지는 시간입니다.
장재기 – 따라 하는 기도 5: 고난
MZ세대를 향한 말이 참 많다. 하물며 요즘에는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MZ세대에 관한 내용을 넣지 않으면 허전하다고 느낄 만큼 너도나도 MZ세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중에도 MZ세대를 겨냥해서 많은 책이 나오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손꼽히는 화두 중 하나가 MZ세대라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MZ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와 역사에 대한 흐름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MZ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 속에도 깊이 침투해 탈권위 현상과 함께 자기 감정에 따라 살아가는 현상을 만들게 됐다. 오늘날 MZ세대로 인해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는 이유, 권위자가 말을 했을 때 그대로 받아들이고 훈종하기보다 ‘왜요?’라고 말하는 이유 그리고 가끔은 비상식적이고 기준이 없는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에제키엘 – MZ세대 사역자가 쓴 MZ세대와 한국교회
요셉은 더없이 고독했다. 그때부터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의 그 영원과도 같은 시간에 요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둠 속을 걸으며 별을 바라보았다. 요셉이 기도를 했을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서성인다. 한순간 고개를 가로젓다가 주먹을 흔든다. 이것은 그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예수님이 평화로운 찬송가나 부활절 주일 또는 영성 훈련을 통해 오시리라고 기대했다. 아침 경건의 시간이나 교회의 식탁 교제 중에 또는 묵상 가운데서 예수님을 발견하리라고 기대했다. 이혼이나 죽음, 소송, 감옥을 통해 예수님을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폭풍우 속에서 예수님을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장 잘 역사하시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다. 폭풍우 속에서 우리의 주의 집중이 가장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맥스 루케이도 – 예수님과 같이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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