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는 이 땅에서 각자 정해진 분량의 고난이 있다. 그 모양과 크기는 다르지만 각자 느끼는 무게는 같다. 겉으로 보이는 고난의 크기는 작아도, 마음으로 느끼는 무게는 크고, 고통은 심하다. 한 번 고난을 견뎠어도 다시 고난을 당하면 괴로움의 크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고난의 크고 작음이 아니다.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 고난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나 스스로 고난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다. 사명자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고난은 어떻게 헤쳐 가고 돌파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과 정리가 필요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스스로 고난에 대한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실패가 내 실수와 잘못 때문인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는 일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을 위함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당하는 아픔과 위기는 무엇을 위함인가?”, “한국 교회가 당하는 수치와 무너짐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질문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윤식 – 미래학자 고난을 말하다
온라인 공론장(유튜브)의 선교를 위한 기독교 조직(교회나 기관)의 문화에서 가장 크게 변화돼야 하는 부분은 사역의 주체가 목회자나 선교사가 아니라 일상과 일터의 전문가와 혁신가들이라는 점이다. 현장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유튜브 생태계는 철저하게 개인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아래로부터 운영되고 유지되며 확장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이러한 이용자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작동한다. 유튜브 공론장의 알고리즘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콘텐츠가 전문성과 일상성을 반영하는 내용이어야 하며, 이것이 일상의 전문가인 평신도에 의해 수행돼야 하는 이유이다. 유튜브 공론장의 콘텐츠는 시청자의 검색 자체보다 선택에 따른 연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유통되므로, 시청자의 관심과 일상적인 재미, 그리고 편의적인 구성과 활용성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다. 따라서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사역은 반드시 ‘성육신적’이어야 한다. 그들과 같은 언어로, 그 알고리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세영 – 유튜브 선교
나의 자녀야, 너의 근심과 걱정을 내게로 가져오렴. 너는 이미 많은 짐을 짊어졌단다. 작은 짐 하나를 더하면 주저앉을 만큼 남들이 모르는 무게를 감당하고 있단다. 너의 무거운 짐을 내게 맡기렴. 내 옆에 앉아 마음 편히 쉬거라.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애썼다. 사랑한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은 ‘내 기준을 통과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야. 너 자신을 ‘자격 미달’로 오해하며 버림받은 정서로 살아가지 말거라.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너를 선택했고 사랑한단다.네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너를 용서할 것이고 다시 일으켜 세울 거란다. 절대로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것이 나의 은혜란다. 쉬는 법을 잊은 너에게 참된 안식을 선물하고 싶구나. 잠시 멈추어 쉬는 것은 세월을 허송하는 게 아니란다. 내게로 와 참된 안식을 누리렴. 너의 지친 몸과 마음이 살아날 거란다. 마음 편히 쉬거라. 내가 너를 품에 안고 더 멀리 더 높이 이끌어 줄 거야.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김유비 – 주님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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