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더 총체적인 존재다. 사람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복잡하고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존재다. 이러한 존재를 그 부모가 다 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존재인 사람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작은 부분일 뿐이다. 사람들은 마치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무엇이든지 다 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한 소치다.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작은 부분이며, 이러한 이유를 부모는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녀를 ‘잘 길러갈 자신이 없어서’,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커서’, ‘학원에 보낼 수가 없어서’ 등등… 그러한 이유는 잘못된 이유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작은데 어찌하여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존귀한 생명이 태어남을 방해하는 것인가?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태어날 귀중한 생명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김수태 – 낳고 낳고 낳고
이국 땅에서 커다란 철제문 뒤에 갇혀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빗장이 질러지는 소리를 처음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떻게 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통제력을 잃고 불확실성 속에 내던져진다. 순간 내가 갇혀 있는 현실이 완전히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이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고 찬양과 경배의 노래를 부르며 그분을 신뢰하고 붙드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나는 좋은 선택을 하기 원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어떤 상황이 와도 헤쳐 나가고 싶었다. 사실 나는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찬양하려고 입을 열 때마다 목이 메었다. 내게 가장 도움이 된 편지들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그저 숨만 쉬세요. 하나님을 늘 바라보세요. 그게 전부예요. 당신에게 다른 걸 바라지 않을게요. 그저 숨만 쉬세요. 그러면 헤쳐 나가게 될 거예요.” 이것이 내게 필요한 말이었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시험받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마른 뼈가 골짜기에 가득한 광경이 상상되었다. 내가 그렇게 되기 직전인 것 같았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잘 마치게 도우소서.’
앤드류 브런슨 – 하나님의 인질
지나고 보니 나의 삶의 운행자는 내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음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 혼자의 생각과 판단으로만 살아 왔다면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과 상처를 경험하며 갇혀 있게 되고, 성공 뒤에는 얼마나 큰 자만과 교만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을까. 마치 내비게이션 없이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운전자와 같은 신세 아니었을까. 크리스천은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중심에 계셔야 한다. 내가 중심이 되는 순간 또는 나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 곧 갈등은 시작된다. 성도 간의 교제도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지 아니하면 불편한 관계로 발전하고 교회 중직을 맡은 직분자들 가운데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에 크리스천 공동체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셔서 혹 덜 논리적이더라도 보다 갈등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물며 수많은 세상적 조직 공동체에서의 갈등은 오죽할까.
윤만호 – 위대한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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