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기형적인 복음은 “나쁜 소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을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다른 요구 사항들을 덧붙인다.” 이처럼 왜곡된 복음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구원과는 관련이 없다. 만일 당신이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께 순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과정에 자신의 행위를 개입시킨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조건을 붙임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훼손한 것이다. 복음은 온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이 기형적인 복음의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매튜 W, 베이츠 – 예수 왕의 복음
기도하는 태도로 성경에 접근하는 습관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는 구절은 우리가 성경을 대하거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억해야 할 매우 적절한 말씀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마치 우리의 대화나 탐색 범위 바깥에서 제삼자로 계신 분이라는 전제하에 ‘그분이 현재(또는 과거나 미래에) 어떤 분인가’를 아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다. ‘오 하나님,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관심을 두는 그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시며, 우리는 그분 앞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삶의 매 순간 그 능력과 은혜에 온전히 의지한다. ‘오소서, 성령이여!’ 거룩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모든 죄와 악을 거부하고, 그것과 분리된 신적 거룩을 구현하신다. 무엇보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신 사건 자체가, 인간의 죄와 무력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한 응답이다. 무한한 사랑과 신적 거룩의 제약 속에서, 그분은 인간의 죄에 대한 신성한 심판을 받고자 기꺼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다. 사랑과 거룩은 또한 성령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도 통합된다. 성령의 주요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백성을 새롭게 하고 성화시키는 일, 즉 거룩하게 하는 일이다.
브루스 밀른 – 기독교 교리 핸드북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똑바로 말할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탄입니다. 나는 25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살면서 내 삶뿐만 아니라 내가 그 정신으로 괴롭힌 사람들의 삶에서 직접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태어나는 날부터 죽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병원의 분만실에는 우리를 지켜주는 천사와 우리의 삶의 길을 가도록 보내진 악령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마귀가 당신의 삶에서 순간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네 단계 또는 시간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두려움의 암을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하기에 이것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은 거울과 같으므로, 당신은 이 부분을 들여다보고 시간과 인생 전체를 먹어 치우는 이러한 패턴과 주기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 옳지 않은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실 것임을 아십시오.
존 라미레즈 –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성령님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