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면 인간적인 이유만 살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이 질문에 최종 답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아득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의 메시지 전체가 이 결론에 이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수백 년 전, 히브리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약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행하심이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끔찍하고 죄악된 행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초대교회의 기도로 답합니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토록 광대하다니 숨이 멎을 지경입니다.
존 파이퍼 –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신 50가지 이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의 일을 더욱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이 무엇이며,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모른다면, 그저 일은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하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결코 ‘돈’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에 종속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재물을 비롯한 천하만물을 다스리는 것이지 그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서는 것과 시민으로서 탁월성을 드러내는 이중의 과업을 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이 삶이 오히려 복된 길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교회와 세상에서 모두 절대주권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업무 전문가라소 잘 세워지고,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결단하며 나누어 봅시다.
권혁근 – 일터속의 그리스도인
크리스천과 힙합. 기름과 물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나의 삶에는 언제나 하나로 공존했다. 하지만 어느 영역을 가든 그들의 무리는 물이었고 난 기름이었다. 힙합이었지만 크리스천이었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분명 나의 설익은 실력과 얕은 신앙 또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여 더욱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의 삶이 가장 힙합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힙합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무언가에 대해 큰 인상을 받으면 ‘힙합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대상에게 위에서 말한 힙합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그렇기에 나에게 예수는 힙합 그 자체였다.
지푸, 최재욱, 이창수 – 비트 주세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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