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주 넘어진다. 자주 실패의 쓴맛을 본다. 어릴 때는 달리다가 혹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면, 커서는 마음이 넘어진다. 자신의 실패나 실수가 드러나고 누군가에게 창피를 당할 때면 우리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붉어진다. 하지만, 실패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없어서 실패할 때가 사실은 더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프로 야구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치는 선수도 타율이 고작 3할대다. 투수가 던지는 공 열 개 중에 세 개 남짓 밖에는 안타를 못 친다는 뜻이다. 공격의 70퍼센트는 늘 아웃인 셈이다. 타자는 땅볼이나 삼진 아웃으로 쓸쓸히 퇴장한다. 만약 이 선수가 아웃을 당할 때마다 자책하고 좌절했다면 3할대 타자가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소명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그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실패한 자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소명의 자리로 변한다. 성도의 실패는 실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패는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류인현 –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광야에 새 길을 내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성취하시는(완성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그분께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시며 그분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밝히 보여주신다(렘 33:2,3).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모욕과 고난을 특권으로 여겼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생기는 하나님의 흔적(손자국, 지문, fingerprint)이야말로 가장 큰 자랑과 영광이 아니겠는가. 주님과 얼굴을 마주할 그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삶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을 가득히 지니고 그분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평안을 잃지 않았다. 우리 얼굴에 자리 잡은 하나님나라, 이보다 강력한 증거가 있을까.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자신의 세상이 철저히 무너져 그분 앞에 엎드러지는 바로 그 자리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다. 무너진 마음, 기대에 부푼 마음, 깨지고 부서져 버린 마음을 그분 앞에 쏟아놓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날마다’ 대신 짊어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상황과 여건은 바뀐 게 없지만,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우리에게 임한다.
김태훈 –마르투스: 증인
어떤 본문을 설교하든 그것의 주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을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본문을 제대로 설교할 수 없다. 즉 그 본문을 전체 성경 안에 정당한 위치에 놓고 설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적 원리를 통해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가리킬 수 없거나, 그 본문의 특정한 진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믿음으로만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청중의 변화와는 무관한 설교가 된다. 모든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설교할 때 그 일은 현실이 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는 약속의 원리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지키는 주체이시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지키시는 확실한 증거이다. 구약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잡다한 인생행로와 이스라엘의 수많은 전쟁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약속을 구체화하시고 더욱 명확하게 차별화하신다.
한광수 – 설교 부흥의 열쇠는 그리스도 완성 설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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