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디 미라흐마디는 과거 미국 대테러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이며, 현재 온건한 무슬림 기관들을 강화하는 국제 교육 단체 ‘세계 자원 개발 및 교육기구(WORDE)’의 회장을 맡고 있다.
미라흐마디는 칼럼에서 “예수님과의 첫 만남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페이지에 있는 한 목사님의 유튜브(YouTube) 링크를 통해서였다. 아무도 나를 전도한 적이 없었고, 기독교인 친구도 없었기에 내가 즉시 사로잡힌 이유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없었다.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 환멸을 느끼던 독실한 무슬림이었음에도, 하나님은 내 안에 초자연적인 스위치를 켜 주셨다”고 했다.
그는 “나를 도와줄 기독교 공동체 없이도 하나님의 참된 본성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내 생각과 온라인상의 훌륭한 성경 콘텐츠만으로 나는 구원받는 믿음에 이르렀고, 집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며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친척도 없었다. 다정하고 충실한 새 조언자(mentor)는 성경, 그리고 인터넷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주권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이슬람에서 예수님에 대해 배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나의 조언자는 매일 전화나 문자로 내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지 확인했다. 비록 그녀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우리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성숙한 성도의 사랑과 인내심으로 나를 가르쳤다”고 했다.
또 “이슬람을 떠난 후 내가 알고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을 잃어 큰 외로움도 있었지만 엄청난 영적 성장도 있었다. 처음 2년 동안 성경은 성령의 능력으로 되살아났다. 로고스닷컴(logos.com)과 같은 온라인 리소스와 신뢰할 만한 성경 교육 목회자들은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다”라며 “마침내 내가 몇 년 동안 다녔던 놀라운 지역 교회를 찾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위대한 믿음의 신비에 대해 배우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있었다. 아직도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실제로 나를 인도할 토끼굴(rabbit holes)을 여전히 애정 한다”고 했다.
미라흐마디는 다양한 학문적 입장과 신학적 복잡성에 대해 “웅변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논쟁의 뿌리에는 죄 많은 피조물인 우리가 믿기로 선택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선택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셨는지가 있다”면서 “칼뱅주의자들은 주로 인간의 전적 타락과 제한된 속죄를 믿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 오직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만 죽으셨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구원을 선택하신 것은 개인의 믿음에 대한 예지(foreknowledge)에 근거한 것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은혜에 기초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베소서 1장 4-6절을 인용하여 “스펙트럼(spectrum)의 다른 쪽 끝에는 그분의 선견지명(prescient view)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며, 하나님의 신성한 예지로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이라고 아신 사람들을 택하신다는 믿음”이라며 “이것은 부르심을 시작하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응답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결과를 아신다고 해서 미리 결정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전했다.
또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신자가 되는지를 궁극적으로 통제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결정적인 요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고 계신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어떻게 구원이 비참한 죄인의 결정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그룹 토의에서 “일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자유의지와 구원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들은 어떤 이는 선택하고 다른 이는 유기한다면 잔인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섬기는 공의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다른 이는 질문하는 것조차 이상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어떻게 믿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반박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미라흐마디는 "어느 쪽이든 구원받는 믿음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은혜와 뜻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 중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게 할 수 없다. 우리의 간증이 아무리 심오해도 타인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상호작용하는 것은 구경꾼인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우리는 기도하고, 중보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주님과 그분의 각 자녀와의 관계는 수직적인 것(vertical one)이다. 이는 땅의 기초를 놓기 전부터 미리 결정돼 있었다”고 했다.
이어 “거룩한 택하심, 전도, 하나님의 절대 의지라는 교리 사이에는 영적인 긴장이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에 대한 우리의 확신 또한 자유롭게 하는 요소”라며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람들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강제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미라흐마디는 “마침내 주님이 내게 “네가 나를 믿느냐?”라고 물으신 이유를 이해했다. 나는 그 결과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했다. 그 무력함 속에 위안이 있다. 나는 마침내 항복에서 평화를 찾았다”라며 시편 34편 4절로 글을 마쳤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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