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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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박사가 진보적 기독교인이 성경을 오용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브라운 박사는 “성경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과, 성경의 저자들이 인간 본성이나 영적 진리의 특정 측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은 서로 다른 주장”이라며 “이것은 전혀 말이 안 되지만,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을 최종적인 진리의 결정자로 여기면서, 마치 성경이 신적 권위를 지닌 것처럼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최신 이론을 비장의 무기로 쓰면서 왜 성경을 인용하는가?”라며 진보적 기독교인이 “글쎄, 성경 저자들은 영감을 받았지만,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몰랐다” 혹은 “그 가르침은 단순히 고대 작가들이 살았던 문화를 반영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는다. 그렇다면 영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성경의 저자들이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면서 관찰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시편 19:4-6, 전도서 1:5 참조). 이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며, 그분의 본질과 속성이 어떠한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브라운은 “그렇다면 누군가는 ‘왜 당신 교회의 여성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명령한 대로 머리 수건을 쓰지 않는가? 우리를 비난하는 바대로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유죄다’라고 할지 모른다”라며 “이는 온당한 물음이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울 시대에는 기혼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이 관례였지만, 소녀와 미혼 여성은 그런 관습을 따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한 가정에 모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환경에서는 무엇이 적절할까? 기혼 여성은 머리를 가려야 하는가?”라며 “바울은 그들이 머리를 가려야 하고, 이는 남편에 대한 복종의 표시라고 말했다. 또한 성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운은 “우리 시대에는 관습이 바뀌었고 머리 수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칙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성별 구분은 중요하며 가정과 교회에 확립된 권위의 구조가 있다”며 “바울이 ‘머리를 가리지 않는 여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될 것이다’라고 일절 말하지 않은 점에 유의하라. 하지만 그는 간음이나 술 취함,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들은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고린도전서 6:9-10).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과 육신의 죄에 탐닉하는 것은 분명 비교조차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 진보 세력이 “‘동성애 행위에 관한 한, 성경의 저자들은 동성 간의 사랑스러운 관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을 축복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남색이나 매춘, 난잡한 성행위 등 학대적인 동성 관계에 익숙했다’라고 주장한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여러 단계에서 무너진다”고 밝혔다. 다음은 브라운이 제시한 5가지 이유다.

첫째, 이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통틀어 사랑하고 헌신적인 동성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동성 관계의 육체적이고 죄악된 본성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고대 세계에는 진정한 동성 간의 사랑이 없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단지 최근에 나타난 현상일까? 그것만으로도 기괴하고 자멸적인 주장이다.

둘째, 적어도 성경의 저자 중 일부는 헌신적인 동성 커플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많은 증거가 있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다룬 상황들이 오늘날 우리가 다루는 상황과 매우 유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바울은 동성애 행위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이는 자연(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신 방식)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자연법, 생물학, 거룩하게 계획된 기능의 문제이지 사회적 관행이나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다.

넷째, 예수님은 인간의 본성을 확실히 이해하셨고, 성과 결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강화하셨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분이 LGBTQ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그들의 고충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인가? (동성애자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한 사람이 바로 이 주장을 사용했다: 예수님은 정말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며, 이 동성애 기독교인은 자기 방식의 오류를 깨닫기보다 예수님을 격하시키는 쪽을 택했다.) 성경은 예수님이 실제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아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에(요한복음 2:24-25 참조), 이 문제에 대한 그분의 판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평생의 결합으로 정하셨고(마태복음 19:4-6 참조), 그 결합 밖에서 행해진 모든 성행위는 죄악이며 더러운 것이다(마태복음 15:19-20 참조).

다섯째, 성경의 저자들이 단순히 동성에게 끌리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발상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 못했고, 인간 본성과 죄의 본질에 대한 신성한 통찰력이 없었다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완전히 자멸적인 주장이다. 만일 당신이 성경의 저자들이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면,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린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회의론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울이 한 말에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그는 분명히 동성애 혐오자였다. 모세와 예수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이 말은 일관성이라도 있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그래, 모세와 예수와 바울은 인간의 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동성애에 관한 한. 오늘날 우리는 더욱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경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라고 믿는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대신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에서 좋아하는 것은 믿고, 싫어하는 것은 거부한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복음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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