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신학연구소(소장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안암동에 있는 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2022년 가을 신학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 기독교학술원장)가 주제발표를 했고,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와 윤철호 박사(장신대 명예교수)가 논찬 및 토론자로 나섰다.
◆ “민중 통해 예수 보는 것 아닌 예수 통해 민중 봐야”
‘민중신학의 문제점과 그 타당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김영한 박사는 먼저 민중신학의 특징에 대해 “민중신학은 전통신학이 출발하는 성경 텍스트에서 출발하지 않고 민중사건이라는 민중 컨텍스트에서 출발한다”며 “그리하여 이 민중사건을 성경 텍스트에서 해석하지 않고 사회경제사적인 분석에서 해석한다”고 했다.
또 “민중신학자들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사회분석을 민중신학에 수용한다”며 “민중신학은 ‘고난의 종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다’고 해석하고, 예수의 고난을 민중의 고난과 연결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민중신학은 “컨텍스트에서 텍스트를 해석한다. 예수에서 민중을 해석하지 않고 민중에서 예수를 해석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민중신학에서 구원은 인간의 정치적 해방으로 변형된다.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성경의 메시지는 소멸되고 사회정치적인 요소가 중요시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민중신학이 신학의 역사 참여와 현장성을 강조하면서 민중들의 억눌린 한을 대변하고, 세계 신학계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예수 사건을 민중운동으로만 해석”한 한계를 갖고 있다.
김 박사는 “민중을 통해 예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민중을 보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민중신학은 민중사회학으로 변형되지 않고 민중신학이라는 신학의 정체성을 지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민중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며, 민중의 고난에서 예수의 고난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예수를 구속자와 구주로 만남으로써 비로소 예수가 구속한 이웃, 민중을 만나게 된다”며 “그럴 때만 민중신학은 신학적 정체성을 갖는다”고 했다.
◆ “프로레타리아트 정치혁명론 아냐… 민중의 ‘삶의 자리’ 밝히는 건 당연”
논찬한 김경재 박사는 그러나 “민중 경험은 민중신학의 촉발 계기이지만 그 진정한 동기는 ‘역사적 예수’를 밝혀내고, 살과 피를 가지고 참사람으로서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다가 십자가 처형을 받은 그 인간 예수의 진면목을 알아보자는 동기가 깊은 뿌리에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또 “민중신학은 예수의 공생애 전체의 궁극적 목적이며, 주기도문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을 또렷이 밝히자는 것이지 프로레타리아트의 정치혁명론이 아니”라고도 했다.
특히 그는 “민중신학이 민중의 현실 고난의 원인을 분석할 때,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사적 시각,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상하부 구조론’을 원용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라며 “극단적 메카시즘(McCarthyism)이 사회를 지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프로이드와 마르크스와 다윈이 밝힌 지성사의 공헌을 부정하지 못 한다”고 했다.
이어 “민중신학은 구태여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변증법에 의존할 필요도 없었고, 남미의 해방신학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며 “예수 시대나 현대나 민중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을 밝히고 분석하기 위해서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의 자리’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 것”이라고 했다.
◆ “민중, 이상적 존재 아닌 양면적 존재”
또 다른 논찬자인 윤철호 박사는 “민중 그리스도론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민중을 이상화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민중은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양면적인 존재로 나타난다”며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도 민중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자들도 민중”이라고 했다.
윤 박사는 “성서에서 ‘연대’와 ‘대리’(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건-편집자 주)는 분리될 수도 없지만 혼동될 수도 없다”며 ”타자와 ‘함께 하는’ 연대는 타자를 ‘위한’ 대리행위의 전제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대리행위 없는 민중만의 연대는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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