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거듭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거듭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4가지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새 생명을 얻습니다.
거듭나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다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이 생명을 가지고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정작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종교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생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니고데모는 우리와 같이 살아 있었습니다. 숨 쉬고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행동했습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영적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눅 9:60을 토대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으나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라고 답변한 것을 보세요.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을 두고 ‘죽은 자들’이라 표현했습니다.
또 눅 15장에 있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24절)이라 말했습니다.
이 모든 구절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거듭났다는 것은 이전의 생명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바로 이 놀라운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임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둘째, 당신은 거듭날 때 초자연적인 것을 체험합니다.
요 3:2절에서 니고데모가 고백하는 내용을 보세요.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랍비(선생)라 하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던 단순한 랍비가 아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았지만 니고데모는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또한 그날 밤에 거듭남을 체험했을 것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기적을 보고서도, 초자연적인 기사를 목격하고서도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겠거니 하거나, 이런 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이런 기적,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냥 저절로 이 모든 일들이 ‘믿어지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거듭남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바람 소리는 들려도 어디로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성령의 사역의 결과인 거듭남도 자연적인 현상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현상을 거듭난 사람은 분명히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 3:6). 성령은 자연 세계의 일부가 아닙니다. 지리산 용문산 계룡산에서 도를 닦으면 나타난다고 믿는 그런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성령은 자연을 초월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한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새 생명은 ‘아들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하셨고 사도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고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이 있으면 당신은 영원한 새 생명이 잇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요 6: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과 연결됨으로써 생명을 얻으며 성령의 역사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의 성령의 사역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 즉 끊어졌던 것을 다시 연결시킴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넷째, 새 본성이 창조됩니다.
당신이 거듭날 때 단순히 옛 본성이 조금 개선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옛 본성은 완전히 개조되어 새로운 본성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 본성은 죄악에서 물든 당신이 죄의 씻음을 받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용서받고 깨끗해진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내주를 통해 당신 속에 빚으신 참으로 새로운 본성입니다. 니고데모에게 말했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본성입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통적으로 이것은 ‘세례’를 말한다고 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으므로 거듭났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존 파이퍼 목사는 여기서 ‘물’은 그리스도인의 세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세례가 필수조건이라면 요한복음 3장 전반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쓰여져야 합니다. 즉, 15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고, 18절에선 “그를 믿는 자마다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얻는 조건이 물세례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아기에게 아무리 물을 뿌린다고 하여 아기가 거듭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해답의 단초는 에스겔서에서 발견됩니다. 36장 24~28절(참조 렘 31:31~34)입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음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에서 물과 성령이 주어지는 목적이 뚜렷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맑은 물을 뿌리는 것은 정결하게 함이며, 새 영을 두는 것은 새 마음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은 우리가 거듭날 때 얻는 새로움의 두 국면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롬 6:6),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골 3:3),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롬 6:11)로 여겨야 하며,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엡 4:22)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거듭나기 전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씻음은 물과 성령에 의해 육신과 마음의 죄악들이 씻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씻음의 목적은 새로워진 새 피조물을 위함입니다. 새 피조물은 물과 성령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굳은 마음이 변화되어 부드러움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고집쟁이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바뀌집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를 받아 회복되어 점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4. 결어
분명한 것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마지막 절에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 관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요 3:36)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결코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낼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로 진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가혹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식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실 때에 매우 차디차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지옥의 문제를 가볍게 다루실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단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은 아부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죄의 자리에 있는 자녀를 그냥 두고 보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자식을 지옥으로 등을 떠밀어 보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못나고 게으른 부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가혹하게 말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죄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15, 33)
거듭남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또 거듭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일부분의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거듭남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핵심주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걸린 문제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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