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공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박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여 하심이라”(엡 1:3~10)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1.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예정론
오늘은 구원의 서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 주춧돌인 작정 혹은 예정에 대해 논하기로 합니다.
대다수 설교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설교 주제 중 하나는 ‘예정론”입니다. 이 주제는 사실상 신비에 속하는 일이며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아십니까? 고대 프리지아의 왕 고르디오스가 전차에 매어 놓은 매듭을 말하는데, 그는 이 매듭을 묶은 다음에 “이 매듭은 매우 풀기 어려운 것으로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정복자가 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은 이 매듭을 너무 쉽게 풀었습니다. 그는 칼을 들어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는데 정상적인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 뒤부터 몹시 해결하기 힘든 진퇴양난의 문제를 일컬어 그것은 ‘고르디오스의 매듭’이라 불렀습니다. 예정론이 바로 이와 같은 매듭입니다. 유명한 아더 핑크는 예정론을 일러 ‘신학적 고르디오스의 매듭’이라 했습니다.
이 주제의 핵심은 “하나님은 구원받을 사람을 창세 전에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당혹스럽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들립니다. 혹자는 이것을 운명론으로 각색하여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정해졌다면 뭣 하러 복음을 믿으라고 전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역으로 공세를 폅니다. 그리고 예정이 맞다면 하나님은 폭군이라고 공격까지 합니다. 자기 사람만 구원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구원에서 탈락시키는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다고 시비를 겁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법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교의학자인 헤르만 바빙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했는가?’ 하고 묻는다면 오직 하나의 답변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뜻의 원인을 탐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큰 다른 것을 요구하는 자이다. 그보다 더 큰 것은 발견할 수 없다”(2권 292쪽)
마찬가지로 예정을 왜 하셨는지에 대한 답은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하나님이 원해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믿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감추신 일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답을 계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우리가 답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답을 하자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임스 도브라는 미국의 유명한 성경학자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신 범위를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려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이 멈춘 곳에서 멈춰야 합니다. 실상 성경에는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역설과 모순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계시하신 데까지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Huc Usque’라고 하는데 ‘여기까지’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을 일러 ‘경계선 신학’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그 권한과 한계를 작정해 두셨습니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때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욥 38:8~11)
실제로 많은 이단 사이비들이 이 경계선을 넘습니다. 매우 모호하고 혼동된 부분에 자기 나름대로 답변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호한 문제에 대해 언급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 모든 이단들은 말씀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악용합니다. 자기 유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말씀을 풀어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합니다. 그래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가서는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멸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단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 변조합니다. 필요하다면 없는 말씀을 교묘하게 가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있을 것으로 아시고 성경에 다음과 같이 무섭게 경고해 두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6)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0~32)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무엇보다 칼빈의 말을 들어봅시다.
“사람들은 사소하지만 많이 일어나는 난제들로 넘어진다. 특별히 예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접할 때 이런 현상은 더욱더 심하다. 예정은 정말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헤쳐나갈 수 없는 미로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고집스러운 호기심 때문에 그 연구 영역이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더욱더 노골적으로 돌진해 파헤치려 한다. (중략) 성령님은 우리가 꼭 알아서 유익한 것만 계시하신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예정에 대한 지식은 우리에게 틀림없이 유익할 것이다”
“성경은 필수적이며 유익한 지식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반대로 필수적인 것이 아니면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성령의 학교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정론의 교리를 청중들에게 숨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기강 3권 21장)
칼빈의 말을 정리하면 하나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분명히 게시하신 것에 대해선 침묵해선 안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계시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을 절대로 잘못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음에도 그것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 달갑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외치는 것을 일부러 꺼리는 것이 더 큰 잘못입니다. 예정론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정론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신비롭고 인간의 이성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진리를 선언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에 따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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