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5) 참고 인내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0~21)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누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입니까? 그는 아마 복음을 위해 모든 고난을 견디는 자일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의 인생은 이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 됩니다. 조금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인생이 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에게 미친 인생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인생은 이 세상에서는 가시밭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손 마이크를 들고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는 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있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저편 길을 걸어가며 전도하는 그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그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다른 사람이 관심을 보일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무엇이 고난이고 핍박입니까? 나의 소리에 어떤 반응도 없는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이분은 거리를 걸으면서 동시에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단 한 마디야말로 이 지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당신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덧입지 못했기에 진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고 소리치셨습니다.
6)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의미심장하게 요한은 여기서 ‘이기다’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성도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권능을 믿음으로 소유하면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세우고 목에 걸었다고 해서 주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권능은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만 발휘됩니다. 마치 전기는 나무토막을 통해서가 아니라 쇠를 통해 흐르는 것처럼 주님의 능력은 믿음이라는 전도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성도는 세상을 이깁니다.
잠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긴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내 무릎 앞에 꿇리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긴다는 것은 모든 입술이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이 창조주이시며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도록 만드는 그것이 ‘이긴다’는 뜻입니다. 이 승리를 위해 우리의 굴욕과 모욕과 비참과 고난이 예비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고난의 승리’입니다. 그 광경이 계시록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0~11)
7)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독려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2~3)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인은 이미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제 자신의 인생은 주님께 다 맡겨버리고 오직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선물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뜻이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선행은 십자가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결코 한 사람의 재능이나 의로움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이타주의로 변화하지 않은 인생이라면 아직 그는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체험하세요. 십자가에서 흐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세요, 그 피의 순결한 피의 능력을 의지하시면서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3. 결어: 그리스도를 당신의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영접하라
이제 결론입니다. 앞의 7가지 내용을 교리적으로 정리해 봅니다. 기독론에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크게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3중직이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직분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신자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3중직의 현재적 사역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의 7가지 변화된 인생은 모두 그리스도의 3중직 차원에서 이해되어지고 실현되는 것입니다.
1) 왕직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왕의 직분을 가지고 통치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빌 1:22~23)고 증언합니다. 또 베드로는 “하늘에 ㅇ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한다”(벧전 3:22)고 증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 삶을 주관주장하십니다. 우리를 마르지 않는 샘터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방해와 도전과 핍박에도 결코 꺾이지 아니하도록 철저한 왕권으로 우리를 보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전을 다른 곳에 의지해선 아니 됩니다. 무당 굿이나 점쟁이의 예언이나 기타 사특한 방법에 우리의 인생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왕권을 가지신 주님의 능력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우주를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2) 선지자직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선지자 직분을 행사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 사역이 선지자적 사역입니다. 그분은 아버지 품속에 계시고(요 1:18), 몸소 아버지를 보셨으며(요 3:32),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골 2:3)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천국의 이야기를 드려주는 예언자이셨습니다. 얼마든지 천둥소리보다 더 큰 소리롤 말씀하실 수 있었지만 잔잔하고 부드럽고 작음 음성으로 속삭이듯이 우리에게 하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소리를 낮추어 말합시다. 따뜻하게 말하고 사로 토닥이며 격려하고 위로합시다. 이것이 선지자 직분을 행하는 일입니다.
3) 제사장직
그리스도는 영원한 우리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제사장으로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시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이 땅에서의 제사장 직분을 일거에 행하시고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그가 아들이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8~10)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표의 자격을 가지고 하늘의 성소에서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지금도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한 우리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게십니다. 바로 이 중보 사역을 통해 우리는 하늘 보좌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히 4:16).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할 다른 어떤 대표나 중보자가 필요없습니다. 그 어떤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을 대신하여 중보자가 될 수도 없고 대표자가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이시오 대표자이시오 우리 구원의 보증자이심을 믿고 십자가의 능력에 의지하여 승리하는 인생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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