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법’ 강행처리에 이어 ‘평등법’(차별금지법)도 곧 입법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교계와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졌다. 교계는 최근 여당 내에서 ‘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검수완박법’ 졸속 처리에 반대해오던 정의당이 돌연 입장을 바꿔 국회 본회의 통과에 적극 앞장 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이 갑자기 수면 위로 부상한 듯 보이지만 사실 이런 기류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평등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공식 밝힌 데 이어 박지현 공동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25일 비대위 회의에서 ‘평등법’ 제정을 민주당의 공식 당론으로 확정해 처리할 것을 촉구한 것만 봐도 심상치가 않다.
다만 민주당이 당장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통과를 밀어붙일 지는 좀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검수완박법’을 무리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론까지 등을 돌린 건 민주당으로서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당장 6월 1일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친 것도 마찬가지다. 당 안팎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내 통과를 여전히 압박하고 있지만 이미 시간적으로 불가능해진 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낙관적인 추정일 뿐이다. 172석의 민주당은 국회에서 무슨 법안이든 마음만 먹으면 통과시킬 수 있는 정당이란 걸 알아야 한다. 21대 들어 ‘대북전단금지법’, ‘공수처법’ 등에 이어 이번 ‘검수완박법’ 졸속 강행처리에서 보듯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런 민주당이 정작 신경 쓰는 건 오랫동안 줄기차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기독교계가 아닐 수도 있다. 이 보다는 강성 지지자들과 진보진영의 압박이 더 껄끄러울 수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 지지층인 진보진영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진보 시민단체들이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게 현실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달 26일 ‘평등법’과 관련한 공청회 계획서 채택 건을 의결한 것만 봐도 민주당이 이전과 얼마나 다른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청회 일시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제2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회 내 논의가 본격 시작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정의당은 5월 내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4일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 지도부를 선출한 정의당은 최우선 과제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내세웠다. 21대 국회 들어 가장 먼저 이 법안을 발의했던 장혜영 원내 수석은 “차별금지법은 당면한 제1과제”라며 “시민에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다시 각인시키는 지도부가 되고 설명과 책임을 다하는 원내지도부가 되겠다”고 했다.
원내 6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인 정의당이 이처럼 ‘차별금지법’ 통과에 의지를 새롭게 다지며 “민주당을 설득할 때가 아니라 책임을 요구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한 것도 단순한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아예 청구서를 들이미는 성격으로 보일 정도다.
여권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교계의 대응도 한층 바빠졌다. 지난 3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은 이날 ‘검수완박법’의 졸속 처리를 당론으로 반대했던 정의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전원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진평연은 이날 두 당이 입법 폭주를 완성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차별금지법은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절대로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악법”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차별금지법의 추진이 실질적으로 진행될 조짐이 보이면, 전국적인 대규모 집회 개최 등 총력 저지 투쟁에 돌입할 것”임을 예고했다.
총력 대응에 나선 교계는 우선 오는 15일 주일 오후에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미스바 구국기도회’를 개최해 국회의 입법 시도에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이 집회에는 그동안 진평연과 뜻을 같이해 온 한국교회연합 등 연합기관과 수도권기독교총연합회, 전국 17개광역시도 226개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 등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3년 국가인원위원회에서 제기하면서 처음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그 후 2007년 법무부에 의해 처음 입법 예고되었고 2013년 민주통합당 의원들 중심으로 입법 시도가 됐으나 성적지향 등의 조항에 기독교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왔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측은 우리 사회가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막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당장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재 우리나라가 ‘양성평등기본법’,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법을 통해 구체적인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동성애, 성적지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기독교계가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이들이 진정한 사회적 약자가 아닌 성 소수자에 대한 합리적 비판까지 봉쇄하려는데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의 해악을 교계와 사회와 알리는데 주력해 온 길원평 교수는 “차별금지법 통과를 막으려면, 차별금지법 옹호 단체보다 훨씬 더 필사적인 노력으로 반대를 외쳐야 한다”며 국민 특히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교계가 그동안 개별적으로 다양한 반대운동을 전개해 왔다면 지금은 그걸 한데 묶어 총력 대응에 나설 때다. 해는 저물고 불이 발등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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