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의 극한 대치 국면이 해소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검찰의 6개 주요 범죄 수사권 중 부패·경제 2개만 남기고 공직자·선거 등 4개는 경찰로 넘기는 중재안을 내놨는데 이를 국민의힘 등 야당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갈등이 봉합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른바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면서 정가는 꽁꽁 얼어붙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다 못한 ‘검찰 개혁’ 완수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궁극적인 목적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 현 정권의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를 미연에 차단하려는데 있었다.
민주당이 법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하기 위해 자당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케 하는 등 각종 꼼수를 동원하자 검찰은 물론 변협 등이 비판에 가세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50%를 넘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자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놓았고 이를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여야 간의 극한 대치 국면은 일단 진정됐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비판해 온 국민의힘이 중재안을 수용하는 쪽을 택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야당에서 곧 여당으로 위치가 바뀌게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새 정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여소야대의 극한 대치가 부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총리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172석의 거대 야당의 협조가 당장 절실했을 것이다.
어찌됐건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가 외견상 합의의 모양을 이루게 된 건 다행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협치의 모습인지, 정치적 야합인지는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에 그 해답이 있다.
박 의장의 중재안은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건 처음부터 검찰 개혁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게 없다. 문제는 한시적으로나마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유지하되 기존의 6대 범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 부패·경제 등 2개 분야의 범죄만 검찰이 수사하도록 한 데 있다.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 범죄에서 공직자와 선거 분야를 뺐다는 게 핵심이다. 이건 누가 봐도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를 막겠다는 의도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이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공소시효가 180일에 불과한 선거 범죄의 경우 손도 댈 수 없다는 뜻이다.
한시적으로 검찰이 맡게 되는 부패·경제 범죄 수사도 늦어도 1년 6개월 뒤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치되면 다 넘기게 되므로 검찰은 앞으로 그 어떤 수사도 직접 못하게 된다는 게 결론이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이 추진해 온 ‘검수완박’의 시기가 약간 늦춰질 뿐 내용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이런 중재안을 여야가 즉시 수용한 것을 정치적 ‘야합’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70여 년간 유지해 온 국가 형사·사법 체계를 법 전문가들의 의견 한 번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합의로 위태롭게 만든 점이다. 위장 탈당 같은 꼼수로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민주당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번 여야 합의에 대해 ‘검수완박’ 시기만 잠시 유예한 것일 뿐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검찰 말살책”이라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 검사, 6명의 고검장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등 유례없는 검찰 지휘부 총사퇴로 맞서고 있는 것만 봐도 검찰의 저항 강도를 체감할 수 있다.
국회는 민의를 실현하는 장이다. 국회의원은 그 민의를 대변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검수완박’은 처음부터 민의를 외면했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 등과 관련한 비리를 덮기 위한 특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당내에서조차 자아비판이 이어진 이런 무리한 입법 시도에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했다는 건 그 무슨 핑계를 대도 비판을 피할 길 없다.
이런 결과에 국민의힘의 책임도 지대하다고 본다. 정권 비리를 덮기 위한 여당의 위헌적 입법 강행에 ‘필리버스터’로 막겠다고 큰소리치다 갑자기 중재안을 수용한 것 자체가 정치적 계산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아무리 반대해도 현실적으로 172석의 민주당을 상대하기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 대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정도를 버리고 정치적으로 ‘꼼수’를 쓰는 건 여나 야나 똑같다고 판단할 것이다.
결국 ‘검수완박’은 여당인 민주당이 당초 내세웠던 검찰 개혁의 명분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타협 대신 몸으로 실력 저지하는 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도 거대 여당의 각종 꼼수 앞에 무력화됐다. 이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는 특권 공룡집단으로 변모한 필연적 결과다.
독점적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여야의 대치나 충돌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것이 내 정파 진영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한 집단 이기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문제가 있다. 국민을 앞세우지만 결국은 자기 이익 실현을 위한 파당 정치에 국민을 끌어들이는 걸 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국민은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하는 길밖엔 다른 길이 없다. 대통령은 5년 단임에 탄핵으로 물러날 수 있는 반면에 국회의원은 다선이 자랑이고 정년도 없다. 이런 제도로 꼼수에 야합을 일삼는 국회에 대의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도 국회의원 ‘국민 소환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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