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의 인내를 통해 우리를 보존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섬기도록 프로그램된 로봇으로 창조되지도, 그런 존재로 구속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여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누리도록 하셨다. 어린 자녀에게 크리켓이나 야구를 가르치는 아버지를 상상해 보라. 아이가 플라스틱 배트를 쥐고 있으면 아버지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서두르지 말고 공을 기다려 봐. 끝까지 공을 보고, 이렇게 치는 거야. 아주 잘했어, 공을 맞췄네!” 공이 멀리 날아간다. 아버지는 힘, 타이밍, 필요한 기술 모두를 아이에게 주었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가르치려고 아이의 손을 붙잡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가르치시는 방법이다. 그분은 우리가 할 수 있게 하신 일을 제대로 행하도록 경고하고 독려하신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리처드 코킨(저자), 우성훈(옮긴이) -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 목사라는 직책은 교회를 맡아 다스리고 예배를 인도하고 신자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는 성직자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물론이고 교회를 다니는 신자나 목사들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 대해 의아해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성경 66권 전체에 목사라는 단어가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강창석 – 굿바이 목사님
시편은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이다. 시편은 신앙의 선배들이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유학 시절뿐 아니라 서울로 돌아온 현장 목회자에게 시편의 고백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힘이 되어준다. 요즘 붙들고 사는 시편 말씀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 나를 살리셨고 살리실 시편 말씀을 사랑한다. 광야의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고 있다. 사슴은 샘이 아니라 흐르는 시냇물을 찾고 있다. 시인은 지금 환난 가운데 있다. 불신자들의 조롱에 눈물을 음식처럼 섭취하고 있다. 잃어버린 하나님, 잃어버린 예배 처소, 잃어버린 예배자로 인한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시인에게서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뇌를 발견한다. 함께 예배하는 자들을 잃고 예배의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사라진 지금, 시인은 황폐해진 예배 처소를 바라보며 절규한다.
조성욱 – 조성욱의 시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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