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교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 당내 의견을 수렴해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민 모두의 ‘평등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것인데 향후 교계의 대응이 주목된다.
윤 비대위원장은 “평등법에 관해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는데 평등 원칙의 실현은 국가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며 “이제 차별의 벽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이런 언급은 차별금지법(평등법) 입법 공론화를 위한 공청회와 당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앞으로 당 차원의 법 제정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법률을 잇달아 발의한 적은 있어도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 것은 의지가 없었다기 보다는 대선 등을 앞두고 굳이 예민한 이슈를 꺼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산술에 의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얼마 전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한 일간지의 보도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시점이 대선 전이라 그런지 “문 대통령이 성소수자, 동성애 등 진보적 가치와 직결된 인권 이슈를 정권이 끝나기 전에 풀어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정도”라는 식으로 청와대 관계자가 말해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이 끝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를 앞두게 된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더 이상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과, 여야가 바뀌기 전에 뜻을 관철시키려 시도할 거라는 점이다. 아직 6월 지방 선거가 남았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여권의 입장에서는 진영 결집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차별금지법 제정에 고삐를 당기려 할 게 볼보듯 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 의지를 본격적으로 수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직 인수위에 이 문제를 중점 과제로 제시하는 등 은근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인권위는 지난 30일 대통령직 인수위에 차기 정부 10대 인권과제로 ‘혐오와 차별의 극복과 평등사회 실현’을 제시했다. 이는 인권위가 차기 정부의 인권 과제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혐오 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공식 선언 등을 제안한 것인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압박 수준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또 “여성·노인·장애인·이주민·난민·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도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심화하고 있으나 이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는 인권위가 차기 정부의 인권 정책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란 분석이다.
교계는 올 것이 왔다는 위기의식 속에 엄중히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일단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지를 드러낸 쪽이 180석에 가까운 거대 여당의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핵심 지도부 인사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가 감지된다.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국민연합’(진평연)의 길원평 교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며 “교계가 절박함으로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라는 말로 기독교계의 체계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진평연은 지난 28일 성명을 발표하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여성과 남성을 인정하는 양성평등 사회를 수십여 가지 제3의 성별을 인정하는 성평등 사회로 바꾸려는 평등법(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려는 윤호중 의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또 민주당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시민단체들과 힘을 모아 강력한 저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교계가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란 위기감이 교계 안팎에서 조성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입법 폭주에서 보듯 현 집권 세력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어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법이든 맘대로 제정할 수 있는 의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물론 현 여당이 ‘대북전단지금지법’이나 ‘공수처법’을 처리할 때처럼 무조건 의석수만 믿고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도 없지 않다. 대선 패배의 원인이 자만심과 ‘내로남불’에 있었음을 민주당이 알게 된 이상 교계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차별금지법을 무리하게 통과시켜 얻을 것 보다는 잃을게 훨씬 많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층 인사가 처음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이상 그 시점이 언제가 되든 교계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됐다. 지금으로선 6월 지방선거 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아무리 늦어도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따라서 이제까지 교계의 대응이 정중동(靜中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민주당은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등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교계는 왜 이 법이 평등이 아닌 차별을 조장하고 동성애자 외에 모든 국민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악법인지 교계 뿐 아니라 국민에게 널이 알리는, 여론을 주도하는 행동에 나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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