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통이다. 산다는 것은 고난받는다는 말과 같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뉘라서 고난 없는 삶을 상상하랴. 해서, 고난 없는 인생 없다. 삶이 있는 곳에는 고난이 있다. 사는 내내 고난은 그림자처럼 나와 동행한다. 하여, 욥기는 내 고난의 동반자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우리의 고난은 중첩되었다. 이전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고난의 이유가 있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이유로, 그리고 같은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다는 점에서 하나라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전 인류는 고통에 관한 한,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욥기가 필요하다. 욥기는 욥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또 한 명의 욥이고, 욥들이다. 부디 욥처럼 고난받고, 욥처럼 고난을 통과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를. 그리하여 욥의 결말처럼 행복하기를 바란다.
김기현 – 욥, 까닭을 묻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대로 남을 사랑하지 못하면, 인간 시스템 전체가 그토록 갈망하는 영원한 차원의 생명의 흐름이 막힌다. 옛 사도는 전혀 가감 없이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고 말한다. 그가 “미워하는 자”라고 하지 않고 단순히 “사랑치 아니하는 자”라고 한 점에 주의하라. 사랑의 부재 자체가 죽음을 부른다. 그것이 철회다. 주목할 부분이 또 있다. 요한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것도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 목적은 남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것일 수 없다. 우리에게 오는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것이 우리의 불요불굴의 충족한 관계가 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목적은 그리스도의 아가페로 남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목적이 잘 개발될 때 인간 자아의 사회적 차원이 변화되며 우리의 모든 대인관계가 변화된다. 사랑은 감정도 아니요 특별한 감정 양식도 아니다. 사랑이란 자신과 타인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방식으로 관계맺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모든 차원에 운행하며 우리 세상을 선하게 개혁한다.
달라스 윌라드(저자), 윤종석(옮긴이) - 마음의 혁신
누가복음은 ‘기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생애의 주요 고비마다 기도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속에서 기도의 향연이 하늘로 올려진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기도의 향연이 피어나길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 선포가 있게 될 때 우리 삶이 감사와 찬양으로 엮일 것입니다. 근심과 불만과 불안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므온과 안나처럼 나이가 많아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목자들처럼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왕궁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정근두 – 구원사의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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