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9일부터 식당·카페 영업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까지로 한 시간 연장하고 마트 등의 방역패스도 중단했다. 김부겸 총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고통을 배려한 조치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위중한 시기에 정부가 되려 방역 조치를 완화한 걸 두고 일부에선 환영하지만, 의료계는 냉소적이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장은 지옥인데 정부가 확산세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며 정부의 코로나19 일상회복위원회 자문위원직을 전격 사퇴했다.
그러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표를 의식한 정략적 결정이 아니냐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분위기다. 총리는 자영업자의 고통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 했지만 질병관리청은 ‘거꾸로 방역’에 대해 궁색한 답변조차 못 내놓는 형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술 더 떠 지난 20일 경기도 유세에서 정부의 방역 조치 완화를 ‘과잉방역’으로 규정하고 완화가 아닌 ‘중단’을 약속했다. 마스크를 벗은 유럽을 예로 들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3월 10일부터 곧바로 ‘거리두기 중단’을 시행하겠다고 큰소리친 것이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마당에 정부는 대선 직후까지 3주간 방역 조치 완화를 결정하고 여당 대선후보는 아예 일부 완화가 아닌 중단을 약속하고 나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제까지 좀 줄어들면 풀고 늘어나면 조이던 정부의 방역 조치와 비교해봐도 일관성이 전혀 없다. 그만큼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선 대선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대다수 국민에게 코로나에 걸려도 별거 아니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정부는 경증 확진자는 ‘셀프’ 재택치료에 맡기고 위중증 환자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역 정책의 변화가 국민에게 코로나를 일반 감기나 독감 수준으로 여기게 한다는 점이다.
최근 일주일간 코로나19 사망자는 이전 주보다 1.8배 늘어난 275명이었다. 이런 사망자 증가 추이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시행한 직후 병상 대란이 벌어질 당시의 최대 주간 사망자 증가 폭인 1.5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오미크론 변이의 증세가 비교적 가볍다고 독감 수준으로 여길 단계는 분명 아니라는 증거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정부가 내논 ‘셀프’ 치료에도 구멍이 뚫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택에서 혼자 생활하던 50대 남성이 확진 하루만인 지난 19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루 전인 지난 18일엔 코로나에 확진돼 재택치료를 받던 부모의 생후 7개월 된 영아가 위급한 상황에서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길에서 전전하다 끝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의료 현장에선 급증하는 확진자로 병원마다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셀프’ 재택치료자가 이처럼 아무런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게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발표하는 수보다 실제 확진자 수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거다. 오미크론이 우세종에서 지배종으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정부가 밀접 접촉자 추적 검사를 포기하고 고위험군·고령층만 PCR 검사를 받도록 한 것이 결과적으로 확진자 수를 줄어들 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대목동병원 천은미 교수는 “실제 국내 확진자는 정부 발표의 2~5배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외국인 투자기업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간담회 자리에서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은 봉쇄조치 없이 물류와 인력의 이동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개방적 경제를 유지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바로 사흘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수준을 최고 등급인 ‘4단계:매우 높음’으로 정하고 미 국무부가 한국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했는데도 문 대통령의 ‘K방역’에 대한 긍지만은 업그레이드가 안 된 채 과거 어느 시점에 고정된 듯하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달에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선 정황이 역력하다. 이는 23~27%의 인구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치유되고 백신 접종이 더해지면서 면역력이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률은 86%로 높은 편이지만 누적 확진자가 약 15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 수준이어서 아직 집단면역을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 따라서 섣불리 미국과 유럽처럼 무장해제를 했다간 정말 큰일 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 들어 부쩍 오미크론 대응체계로의 전환과 재택치료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와 상반된 메시지를 내는 이유는 어떻게서든 대선 고지를 무사히 넘겨야겠다는 정치적 셈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불거지고 있는 방역 실패 책임론과 자영업자들의 집단 반발 또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정부로서도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항과 반발이 터져 나오는 일부 영업장에 대해서만 거꾸로 방역 완화조치를 내린 것은 당장 발등의 불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총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대선 이후에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야 할 의료현장의 혼란과 자영업자의 가중된 고통은 누구도 대신 져줄 수 없다.
더구나 집단적인 저항과 반발을 고통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응수한 정부가 확진 사례가 거의 없는 교회 등 종교시설을 두 달이 넘도록 30%로 묶고 있는 건 ‘선택적 방역’ ‘정치방역’을 자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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